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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뉴욕과 베이글, 그리고 유대인 총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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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별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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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 김은별 특파원] 동그란 모양에 가운데에는 구멍이 뚫린 도넛처럼 생긴 빵, 물에 한 번 끓였다 구웠기 때문에 쫄깃한 식감을 가지고 있는 빵인 '베이글(Bagel)'은 미국 뉴욕의 상징이다. 뉴욕의 길 어디서든 베이글을 파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고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에 연어와 양파 등을 얹어 먹으면서 커피를 곁들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베이글의 유래는 유대인 사회에서 비롯됐다. 1900년대 초 뉴욕을 중심으로 폴란드 이민자들이 정착했고, 이민자들이 빵을 구워 팔면서 베이글이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유명해진 유대인 이민자들의 이름은 아직도 뉴욕에서 유명한 베이글 가게들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전세계 유목민이 된 유대인들 중에서도 미국에 정착한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베이글은 하나의 예일 뿐이지만 그만큼 본인들은 미국 사회에 빠르게 흡수돼 새로운 문화를 만들 만큼 정착했다는 자부심이다. 미국의 IT기업들과 금융ㆍ경제 전문가들의 상당수도 유대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를 비롯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 역시 유대인이다. 이런 미국에서 "유대인은 다 죽어야 한다!"며 총격을 가했다니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질 만 하다.

27일 반유대주의자로 추정되는 40대 백인 남성이 피츠버그 유대교 예배당에서 총기를 난사해 11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했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기자의 뉴욕 집 근처에 위치한 유대교 사원에는 13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애도했다. 사원을 가득 채우고도 다섯 블록이 넘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미처 입장하지 못해 길에 서 있게 된 시민들에게는 메가폰을 이용해 중계했다. 이 외에도 뉴욕 곳곳에 위치한 유대교 사원에서 집회가 열렸고, 뉴욕시장도 참가해 "뉴욕 시민들이 총격 사건으로 인한 11명의 희생자 및 가족과 함께 할 것"이라고 위로했다. 미국 대도시들에 얼마나 유대인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총기사고가 나면 늘 그랬듯 그들은 두렵지 않다고 외쳤지만 사실은 두려워 보였다. 사원 앞에는 뉴욕 경찰(NYPD) 차량들이 자리잡았고, 사원에 입장할 때에는 삼엄한 보안검사가 진행됐다. 유대교를 믿지는 않지만 사원 인근에 살고 있다는 렌지 씨는 "유대인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고, 우리는 혐오범죄 때문에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의미로 '맞서 싸우겠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다. 경찰 출신인 에릭 아담스 전 뉴욕주 상원의원은 같은날 "이제부터 나는 유대교 사원에 갈 때마다 총을 가져갈 것"이라며 "임무 중이 아닌 경찰들도 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브 히킨드 뉴욕주 하원의원 역시 "애덤스에게 동의하며 바로 개인 총기를 등록했다"며 "만약 우리가 타깃이 된다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무장할 자유'라는 미국의 총기소지 원칙이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 같지만, 잇따른 혐오범죄로 결국 미국 사회도 쪼개지고 있는 셈이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유대인 혐오 범죄의 책임은 없어 보이지만, 사실 혐오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

미국 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혐오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번엔 유대인이지만, 언젠가 타깃은 한국인이 될 수도 있다. 혐오 범죄를 막기 위해 무장이 필수적인 사회가 오지 않기를 바란다. 언젠가 예배당에서 옆자리에 총을 찬 사람과 함께 기도를 하거나, 베이글 가게에 갈 땐 총을 꼭 챙겨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뉴욕 김은별 특파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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