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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형의 오독오독] 위화도 회군은 치밀한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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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전쟁보다 치열했던 전쟁의 이후 한국사'

[이근형의 오독오독] 위화도 회군은 치밀한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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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사불가론' 허점 지적
정상보다 매우 빨랐던 행군속도를 근거로 '계획된 행동' 분석
얼마 전 인터넷 공간에서 '전쟁'이 났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당시 병력이 전투병만 113만명이고 보급병까지 합치면 300여만명 수준이었다는 주장과 전투병은 30여만명이었고 보급병을 합쳐 113만명이라는 주장의 대결이었다.

'전투병만 113만명 주장파'는 수나라의 역사서인 '수서(隋書)' 속 기록을 근거로 들었다. '수서' 양제편에는 "고구려를 침략한 수나라 군대의 총병력은 113만3800명이지만 이를 200만 병력이라고 칭했으며 보급부대의 숫자는 이것의 배가 됐다"는 내용이 있다. '다 합쳐 113만명 주장파'는 기록 자체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중국 역사에 병력 뻥튀기가 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지' 속 적벽대전의 조조 측 100만 대군이나 이릉대전의 유비군 70만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전투병만 113만명파는 기록에 이미 200만명으로 뻥튀기했지만 실제로는 113만명이었다는 고백(?)이 있기에 두 번 뻥튀기했다고 의심하긴 어려우므로 여타 중국 역사서와 달리 이 기록은 신빙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 합쳐 113만명파는 당시 인구 규모나 보급 능력을 봤을 때 고구려까지 113만명이나 되는 전투병을 운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논쟁 속에 당시 수레의 수송 능력, 수나라가 운하를 팠던 기록, 다른 전쟁과의 비교, 군사 전문가의 주장, 논문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결국 한쪽이 패배를 인정할 만한 결론까지 도달하진 못한 채 이 전쟁은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고 끝이 났다.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교수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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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은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로 전쟁사 논쟁을 즐기는 이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전문가다. 그의 신작 '전쟁 이후의 한국사'는 고조선부터 일제강점기까지를 4부로 나눠 전쟁과 그 후의 이야기 32개를 다룬다. 책 이름 자체가 '전쟁 이후의 한국사'이고 고조선 멸망 이후 배신자들의 기록, 나선정벌 이후 종갓집이 늘어난 이유 등 전쟁 이후의 이야기를 상당수 다루지만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저자가 사료에 군사 전문 지식을 더해 사료로는 남아 있지 않은 지형ㆍ전술 등 디테일을 파고드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백제 부흥군의 최후 결전지인 주류성의 위치를 추적하는 부분이 그렇다. 저자는 최근 전북 부안의 위금암산성이 주류성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는 학설을 소개하고는 이를 반박한다. 그는 왜군이 백제 부흥군을 구원하고자 금강 하구에 상륙했는데, 위금암산성이 주류성이었다면 이 전략이 군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부안의 주류성을 구원하려면 변산반도에 상륙하는 것이 합당한데 굳이 나당연합군이 이미 방어진을 구축한 금강 하구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왜군이 무리를 해서까지 금강 하구에 상륙한 것은 주류성이 변산반도가 아닌 금강 하구 근처에 위치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성계 위화도 회군을 다룬 장도 분석력이 돋보인다. 이성계는 '사불가론(四不可論)'을 설파해 회군의 정당성을 만들었다. 사불가론은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 "둘째, 농번기인 여름에 군사를 출동시킬 수 없다" "셋째, 대군이 원정 간 사이 왜구가 침공할 것이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의 아교가 풀어지고 전염병에 걸릴 것이다" 이 네 가지 이유다. 첫 번째 이유는 사대주의적이지만 패배 시의 후폭풍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나머지 항목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저자는 군사적 관점에서 사불가론의 허점을 지적한다. 그는 고구려와 수, 신라와 당의 전쟁 등을 예로 들며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선제공격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이유인 농번기 출병의 경우, 현지 조달을 고려하면 오히려 농번기에 출병하는 것이 장기 원정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또 고려는 왜구에 대비한 병력이 이미 배치돼 있었으며 날씨상의 악조건은 적도 마찬가지이기에 설득력이 없다고 봤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철저하게 계획된 군사 작전이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근거로 든 것이 회군 속도다. 책에 의하면 고려에서 요동으로 출발할 당시 이성계군이 평양에서 위화도까지 약 200㎞를 행군하는 데 걸린 시간은 20여일이다. 하지만 위화도에서 개경(고려의 도읍지ㆍ개성의 옛 이름)까지 약 400㎞는 단 10여일 만에 주파했다. 군대에서 행군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현대의 군도 40㎞를 정상적으로 행군하면 중간의 식사 시간을 포함해 12시간 이상 걸린다. 이 일정으로 10여일간 행군한다는 것은 보병에게 엄청난 무리를 준다. 정해진 목적이 없다면 이 속도로 군을 움직일 이유가 없다. 더구나 회군이다.

또 주장을 강화해주는 근거가 있다. 위화도에서 우왕에게 두 차례 회군 요청을 한 이성계의 첫 번째 회군 요청일은 5월13일로 이 시기에 양광도에 왜구가 침입했다. 두 번째 회군 요청을 한 날은 5월22일로 이때 이성계는 왕의 답신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회군을 시작한다. 왜구를 막기 위해 수도 방위 부대가 출병한 시기와 이성계가 서둘러 회군을 시작한 때가 겹친다.

이를 종합하면 이성계는 왜구의 침략으로 수도 방위 부대 상당수가 출병한 것을 알았고 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개경을 함락하기 위해 서둘러 회군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역사는 끊임없는 논쟁과 재해석으로 후대에 전해진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 중에서도 전쟁은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은 주제다. 엇갈리는 사료 해석, 여기에 온갖 'if'까지 붙은 전쟁사 논쟁 속에 자신의 무기가 될 전문 지식을 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이들에게 '전쟁 이후의 한국사'는 교양 지식 혹은 '키워력(키보드 워리어 능력)'을 늘려줄 수 있는 반가운 작품이다. 

전쟁보다 치열했던 전쟁 이후의 한국사 / 이상훈 지음 / 추수밭 / 1만60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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