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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만년필과 마커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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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통점이 있다. 즐겨 사용하는 펜이다. 한 명은 학생 운동을 한 인권 변호사 출신이고 다른 한 명은 부동산 사업가 출신에 진영도 다르지만 묘하게도 서명을 할 때면 비슷한 선택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합의문 서명 후 문 대통령에게 펜 선물을 하며 두 대통령의 서명 습관이 드러났다. 중요한 문서인 만큼 고급 만년필을 사용하고 선물했을 것이란 추측은 여지없이 깨졌다. 청와대는 선물받은 펜이 사인펜이었다고 공개했다. 문 대통령이 평양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 서명에 네임펜을 사용한 것에 대한 비판이 무색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부터 사인펜 애호가다. 미국에서는 마커펜이라고 부른다. 지난달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왜 마커펜을 이용해 서명하는지를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펜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의미다. 그는 애초부터 볼펜이나 만년필을 선호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은 각종 법안이나 서류에 서명한 후 관련인들에게 펜을 선물하는 관습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커펜을 선물로 줘 국격을 깎아내리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온 이유다. 미국의 대통령은 전통적으로 자국에서 생산된 크로스 브랜드 펜에 본인 서명을 각인해 사용하고 기념품으로도 활용했다. 억만장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지나치게 비싼 펜을 사용할 것이라는 걱정이 아니라 너무 저렴한 펜을 선택할까 우려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해 초 취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가족과 공화당 관계자들에게 둘러싸여 여러 장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이 같은 우려가 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사인이 들어간 볼펜으로 여러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대로 볼펜으로 선택했고 백악관 납품이 이뤄졌다. 이 펜은 역사적인 북ㆍ미 정상회담 합의문 서명에도 사용됐다. 당시 미국 측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 펜을 쓰도록 준비했지만 김 위원장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건네준 펜으로 서명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곁에는 여전히 마커펜이 있다. 각종 서명은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 관한 기자회견 원고에서도 마커펜을 사용해 손글씨로 써 넣은 내용들이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손으로 글을 쓰는 상황에서 찍힌 사진에는 대부분 마커펜이 등장한다. 이를 두고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대통령이 전통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비판과 본인의 기호 문제라는 주장이 맞선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만년필을 사용하면 서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대량 생산과 컴퓨터, 스마트폰 보급으로 볼펜이나 만년필은 사용 빈도가 극히 낮아졌다. 많은 애호가가 있지만 만년필은 필기구라기보다는 중요한 서류에 서명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깨지 못하고 있다. 사인펜이나 마커펜이 서명하는 데 편리하다는 건 써보면 안다. 과거의 틀에 집착하는 이들이 만년필을 고집한다. 그런 면에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단아다. 전임자들이 외면한 북한 문제 해결에 주저하지 않고 있다. 어떤 펜을 사용했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내용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의 공유 덕일까. 각국 정상과 각을 세우는 트럼프 대통령도 문 대통령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뜻이 맞아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음 차례는 김 위원장이다. 비핵화를 결심했다는 김 위원장은 아직 서명에 만년필을 고집하고 있다. 세 정상이 모여 고급 만년필이 아닌 마커펜으로 진정한 비핵화와 평화를 약속하는 문서에 서명하는 순간을 전 세계는 진정한 변화의 장면으로 기억할 것이다.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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