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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오늘은 천사들의 마지막 날/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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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각도를 조금씩
바꿀 때
얼굴이 하나씩 늘어났다

햇빛이 얼굴을
조금씩 열고 들어갈 때
골목 냄새가 났다
초록 직전
땅속을 상상하는 일

심장을 가볍게 옮겨 보는 일

허공은 신들의 자세를 닮아 갔다
흰 옷
긴 삽

햇빛 한 삽에 얼굴 하나씩 떠졌다

하양 바탕
하양 얼굴

햇빛은 늘 처음이다

앞을 향해
손을 가만히 내밀었다

허공이 잊은 것은 날개

모두 사라진단다
날개는 신들의 유머였다

■산뜻한 시다. 아마 봄에 읽었다면 더 그랬겠지만 무더운 여름에 읽어도 상쾌하다. 그 까닭은 시인의 맛깔스러운 상상력과 더할 수도 덜할 수도 없는 매력적인 문장들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햇빛 한 삽에 얼굴 하나씩 떠졌다"는 아마도 봄날 햇살을 따라 싹이 움트는 것을 두고 쓴 문장인 듯한데 수식어 하나 없이 마냥 풍요롭다. 그리고 이에 맞추어 그 앞 연을 되짚어 보면 "긴 삽"은 "햇빛"이고, "흰 옷"은 "허공"인 셈이다. 다시 그 앞의 연들을 거슬러 올라가 묶어 보면 마치 "신들" 같은 "허공"이 "흰 옷"을 입고 "햇빛"이라는 "긴 삽"을 들고 "초록 직전"의 "땅속"을 일구는 모습을 그릴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이런 빈틈없는 상상을 하느라 얼마나 오랫동안 봄 하늘을 쳐다보았을까? 그저 고맙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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