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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석의 시네 라티노]아르헨티나 영화 ‘우등시민(El Ciudadano iluste·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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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함과 무식함이 주는 공포, 유명 소설가와 그의 옛 고향 사람들 간의 블랙 코미디

노벨 문학상
아르헨티나의 유명 소설가 '다니엘 만토바니'는 노벨 문학상을 받는 자리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수상 소감을 이어간다.
“이 상을 받는 것은 영광이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심사위원, 전문가, 학계, 그리고 왕가들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썼다는 것이 내가 예술을 대하는 정신과는 무관하기에 저를 위선가로 만들어 주시고, 내 창작 활동의 종말을 선사해 준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다니엘의 발언으로 장내는 잠시 적막이 감돌지만 이내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5년 후, 작품을 더 이상 쓰지 못하고 있는 다니엘은 여러 국가에서 주는 모든 공로상과 훈장, 언론 인터뷰, 각종 행사 초대 및 초청 강연 등을 모두 거부하며 스페인의 자택에서 칩거하던 중 자신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의 작은 시골 마을 ‘살라스’에서 우등시민으로 선정되어 상도 수여하고 강의도 요청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평소 같으면 그냥 무시해 버릴만한 조그만 행사에 관심을 보이며 가겠다는 결정에 그의 비서는 의아해 하며 정말 가실 거냐고 여러 번 물어보지만 그는 가겠다는 대답을 한다.

시골 마을 ‘살라스’
자신이 태어난 곳 ‘살라스’에 도착한 다니엘, 40년이 지나도 하나도 변하게 없는 고향을 산책하며 향수에 젖어드는 것도 잠시, 자신을 초대한 시장은 처음부터 이상한 제안을 한다. 시청에서 걸어가도 되는 거리인 우등시민 수여식을 하는 마을회관까지 소방차를 타고 지역 미인대회 수상자와 함께 퍼레이드를 해야 한다고, 평소 같으면 다소 민망한 상황이 싫어서 단칼에 거절하겠지만 고향에 와서인지 관대해진 그는 소방차 퍼레이드뿐 아니라 시장이 제안하는 마을 사생대회 심사도 맡게 되고, 지역 TV방송 출연 등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 바쁘다. 마주치는 주민들의 지나친 배려와 친절함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는 온화하게 행동하며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한 강의 후 에는 절대 사람들과 사진을 안 찍는 그가 단체 사진까지 허용한다.
그리고 어릴 적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 안토니오를 만나 반가워하며 그가 자신의 첫 애인이던 이레네와 결혼한 사실 또한 알게 된다. 오후에는 자신이 마을에 온 것을 알고 호텔까지 찾아 온 이레네와 함께 추억의 장소에 함께 가서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하며 좋은 시간을 보낸다.
그날 밤, 호텔에서 쉬고 있던 그에게 낮에 했던 강의 도중 강의 내용과 당신의 인터뷰 내용이 다르다며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던 당돌한 여학생이 찾아와 난데없이 팬이라고 저돌적으로 안기고 그녀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고향, 우등시민, 절친, 옛 애인 그리고 어린 여자와의 하룻밤까지 모든 게 완벽한 하루 같아 보였다.
◆ 모순의 습격
다음날, 여전히 바쁜 마을 행사 일정을 소화하던 다니엘은 전날의 평화 같은 하루와는 다르게 난감한 상황들을 겪게 된다. 사생대회에 출품한 자신의 작품을 선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찾아 온 마을의 미술협회 회장이 찾아와 난동을 부리고, 지나치듯 저녁식사에 초대했던 한 남자는 왜 어제 안 왔느냐며 성의를 무시했다고 따지고, 소아마비 아들을 데리고 와서는 당신은 성공하고 돈도 많이 벌었으니 고가의 휠체어를 자신의 아들에게 기부해 달라는 사람 등등.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대되어 간 안토니오, 이레네 부부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 나타난 그들의 딸은 전날 자신과 잠자리를 한 그 여학생인 것이다. 모든 게 혼란스러운 다니엘은 호텔로 돌아오고 자신의 방에서 옷을 모두 벗고 그를 기다리던 안토니오, 이레네 부부의 딸을 보고 화들짝 놀라 쫒아내고 겨우 잠이 들지만 악몽에 시달린다.

본색이 드러나다
다음날 사생 대회 시상식에 참여한 다니엘은 어제 찾아와 난동을 부린 미술협회 회장의 작품이 대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알고 참고 있던 인내심이 폭발하여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온갖 독설을 날리고 화가 난 회장이 폭력을 휘두르며 장내는 난장판이 된다. 도망치듯 행사장을 빠져나온 그에게 급하게 달려온 이레네는 자신의 딸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며 소리치고, 어쨌든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당신을 가만히 안 둘 거라며 도망치라고 하지만, 결국 안토니오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약속했던 밤 사냥을 가자며 찾아와 차를 타고 둘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배연석 객원기자

배연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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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등시민”은 자신의 생각을 감추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성공한 사람과 드러내지는 않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순적인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대비 시켜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들여 다 보게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다니엘 같이 성공한 사람들의 자만과 오만함에 불편할 때가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에게 다가가 친절함과 아부를 무기로 뭔가를 얻어내려는 것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등시민’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영화 초반 다니엘이 노벨문학상을 부정하는 것처럼 어쩌면 그 조건은 타인이 인정해 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치부는 오직 자신만이 알기에…….

배연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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