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신창호, 5월 10~12일 LG아트센터서 '맨 메이드' 공연
무대 위에 선 두 무용수의 움직임은 거울에 비친 듯 정확히 일치한다. 손과 팔을 쭉 펴는 큰 동작, 허리를 뒤로 젖히는 모습이 낯익다. 한 무용수는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착용했다. 헤드셋을 착용한 무용수의 움직임을 다른 무용수가 동시에 재현하고 있다. 국립무용단이 오는 10~12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할 안무가 신창호(41)의 새 작품 '맨 메이드'(Man made)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매체의 교감이 맨 메이드의 주제다. 신창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인간의 의미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류 최초의 가상현실이라 할 수 있는 벽화를 시작으로 현실과 가상이 혼재된 혼합현실(MR)을 아우른다. 여섯 장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에서 무용수 스물네 명이 한 픽셀로 기능하며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한다.
신창호는 가상현실을 주제로 한 새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렸다고 한다. 1999년 5월에 개봉된 이 영화는 전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서기 2199년, 인류는 인공지능(AI)에 의해 가상현실(매트릭스) 속에서 살게 된다. 영화는 매트릭스에서의 삶이 거짓임을 깨달은 인간들과 AI의 사투를 세 편에 걸쳐 그렸다.
가상현실은 우리 무용계에서 드문 소재다. 모험이고 도전이지만 새로움에 목마른 신창호에게는 신세계다. 그는 2009년 최연소로 LDP무용단(laboratory dance project) 대표가 된 뒤 세 차례 연임하며 6년 동안 전국 지방 공연, 유럽투어ㆍ북미 진출 등 현대무용의 대중화와 해외 진출에 노력했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백지상태에서 시작했어요. 지난해 첫 미팅 때 예술감독이 '작품을 구상해 놓은 게 있냐'고 묻기에 2주간 시간을 달라고 했죠. 제목도 제가 정했는데요. 인간과 조화를 키워드 삼아 '맨'을 떠올렸고 '메이드'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미적 감각을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정했습니다. 가상현실 세상이 오더라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신창호는 "과학기술 등을 융합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다. 공연계가 어디까지 진화할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공연장에 오지 않아도 예술작품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해 증강현실(AR)을 활용한 '포켓몬고'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봤다"며 "무용이란 콘텐츠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분들이 즐길 수 있을지 고민을 늘 하고 있다"고 했다.
신창호가 제시한 가상현실이란 주제에 무용수들은 당황했다. 무용수 박혜지는 "선생님께서 안무노트를 펼쳐놓고 설명해 주셨는데 이해가 안 됐다(웃음)"며 "굉장히 미래지향적인 주제라 두렵기도 했지만 흥미로운 도전이었다"고 했다. 이번 작품에서 VR 헤드셋을 쓴 이요음은 "처음 착용했을 땐 모든 게 초록색과 하얀색으로 보여 위축됐지만 점차 적응이 됐다"고 했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두 무용수가 장식하기 때문에 이들의 어울림이 중요했다. 박혜지가 한예종 2년 선배로,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무용하며 10년 넘게 친분을 쌓았다. 신창호는 "박혜지는 한국무용을 해 왔지만 사이버틱한 움직임에도 센스가 있어 1순위로 생각했다. 문제는 파트너였는데 이요음이 체형도 비슷하고 평소 서로 동작을 흉내 내는 등 자매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배역 과정을 설명했다. 이요음은 신창호에게서 현대무용 강의를 들었다.
신창호 안무가는 발레를 전공했던 어머니의 권유로 춤을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알린 건 2002년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한 '노 코멘트'(No Comment)였다. 당시 중동 음악과 비보잉을 결합하는 파격적 시도로 국내외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독일 인스브루크 무용단 레퍼토리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안무가로서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 신창호는 "제가 전라도 광주 출신인데요. 항상 가슴에 5·18 민주화운동이 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외부인의 시선이라는 신선한 접근으로 큰 공감을 얻었는데요. 저는 춤으로 그 분들의 넋을 위로하는데 작은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문화부 기자 factpoet@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일할 사람 없어 망하게 생겼네…7년 뒤 국민 절반...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