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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죽음의 방/이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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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펼치면
시인의 말이 묘합니다

같은 이치로 사람의 말
개의 말
그리고 죽음의 말이 있습니다
모든 죽음은 진행 중이므로
개인마다 각자 연재 중인 죽음의 말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작은 말 아주 평범한 말로
첫 장의 죽음,
그 페이지에 실어야 합니다

성장기, 성공기, 극복기 같은 것은 우후죽순이지만
왜 망조(亡兆)기 같은 것은 없을까요
비록 내가 없는 시대의
실패담이 되겠지만
꼭 필요한 후일담입니다

끝을 살피는 일, 죽음의 말을 놓고
한 반나절 고민 중입니다
수확을 포기한 논바닥 같은
낱말이 줄을 서고
말이 무거워 목이 조금 들어간 흔적도
고민 옆에서 행여 기다립니다

옆집의 새소리가 사그락사그락 들려
이름을 물어볼까 합니다


■'책임이나 죄를 면해 주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면죄부'는 단지 비유가 아니라 진짜 있었다. 특히 15세기 말 산피에트로 성당 재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에서는 면죄부를 대량 발행했는데, 그로 인해 종교개혁이 촉발되기까지 했다. 면죄부는 한마디로 살아 있을 때 지은 죄를 그때마다 돈으로 대신 갚는 것이었다. 결국 면죄부는 당시 부자들에게 이승의 지복(?)을 죽음 이후까지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한 증표였던 셈이다. 웃긴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생각해 보면 절대 웃을 수만은 없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삶과 함께 "진행 중"인 죽음은 삶의 윤리가 되어야 한다. 당장 삶을 완전히 중지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죽음 이후는 전혀 없다는 맥락에서. 그러니 오늘 하루하루를 "죽음의 말을 놓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면죄부를 잔뜩 움켜쥐고 죽은 당신은 결코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을 테니.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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