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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진실을 영원하게..." 할리우드 초석 다진 오순택 눈 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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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진실을 영원하게..." 할리우드 초석 다진 오순택 눈 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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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배우로 산다는 건 산에서 고래를 찾고 바다에서 호랑이를 찾는 일과 같다." 할리우드 진출 1세대인 원로배우 오순택씨가 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전남 강진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고인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8월 미국 네이버후드 플레이하우스에 진학했다. 그레고리 펙, 폴 뉴먼, 스티브 매퀸 등 유명 배우들을 배출한 뉴욕의 명문 연기학교다. 집안의 주문으로 국제사법을 전공하려고 유학길에 올랐으나 네이버후드 플레이하우스 인근 하숙집에 머물면서 돌연 진로를 바꿨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에 빠져 지내고, 서울 단성사에서 영화를 보며 꿈틀거리던 천부적인 '끼'를 숨길 수 없었다. 영어에 능통하지 않았으나 36대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다.

고인은 낮에 공부하고 밤에는 일했다. 배우들이 야식을 먹던 그리니치 빌리지 커피숍에서 웨이터로 근무했고, 연극이 보고 싶을 때는 극장에서 일하며 티켓 값을 대신했다. 하숙비를 아끼려고 도서관 쇼파에서 몰래 잠을 자는 등 어렵게 학업을 이어갔다. 부단한 노력으로 UCLA 대학원까지 입학해 연기와 극작으로 1호 MFA(Master of Fine Arts)가 됐다.

그는 1965년 브로드웨이 상연 연극 '라쇼몽'에서 남편 역으로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LA 타임스로부터 '무대에 새 스타가 탄생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는 동양인 배우가 됐다. 모던댄스, 발레, 팬싱, 태권도, 유도, 쿵후 등의 실력을 갖춘 만능 연기자로 알려져 영화 '최후의 카운트다운(1980년)', 드라마 '에덴의 동쪽(1981년)' 등 영화와 TV 드라마 100여 편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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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명성을 얻은 작품은 1974년 개봉한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주인공 제임스 본드(로저 무어)와 짝을 이루는 홍콩주재 영국 정보원 힙 경사를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 액션스타 척 노리스와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대특명(1984년)'에 출연해 뛰어난 무술 연기를 뽐냈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1998년)'에서는 뮬란(밍나 웬)의 아버지 파주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1983년과 1986년 미스 유니버스대회에서 두 차례 심사위원을 지냈고, 아카데미상의 후보와 최종 심사를 맡는 아카데미회원에도 가입했다. 모두 한국인으로서 최초다.

고인은 할리우드에서 예명 없이 'Soon-Tek Oh(오순택)'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며 한국인 배우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할리우드에 진출하면서 엑스트라를 맡지 않겠다는 원칙도 세웠다. 그는 "촬영장에서 엑스트라는 인간 대우를 못 받았다. 몸뚱이만 왔다 갔다 해도 돈을 주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이 된다"고 했다. 한국인을 비하하는 장면을 담았다는 이유로 마이클 더글라스가 주연한 '폴링 다운(1993년)'의 출연 제의를 거절해 교포사회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고인은 좋아하는 배역을 골라 맡아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으나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배우가 됐다. 특히 한국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2001년 한국종합예술학교의 초청으로 귀국한 뒤 계명대학교와 서울예술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여든한 살이던 2014년에 연극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에서 출연하는 등 연기에도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가슴속에 박혀 있는 진실을 연기해야 한다"고 자주 주문했다. "연기란, 삶의 오묘함과 숭고함을 담아야 한다. 또 진실하면서 상상력이 이뤄낸 것이어야 한다. 순간의 진실을 영원하게 하는 행사가 바로 연기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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