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종중 땅 무단점유해 농사 지었어도 개간비용은 지급해야"

“무단점유한 땅 돌려주고 밀린 임대료는 개간비용(유익비) 공제하고 지급하라”

[아시아경제 장용진 기자] 종중의 토지를 수십년 동안 무단점유해 농사를 지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시효취득을 할 수는 없지만, 토지 개간 등에 들어간 비용을 청구할 수는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김해김씨 판서공파 종중이 김모씨 등을 상대로 낸 토지인도 및 임대료 청구소송과 피고(반소 원고) 측인 김씨가 판서공파 종중을 상대로 낸 반소의 상고심에서 원고(반소 피고) 일부 승소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원심 판단이 대체로 정당하지만 일부 액수산정 기준이 잘못됐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판서공파 종중은 토지소유권을 되찾고, 밀린 임대료 가운데 개간비용을 뺀 금액만큼을 돌려받게 됐다.

김씨는 아버지 대부터 종중소유의 땅을 경작해 과수원을 운영해 왔다. 김씨는 과수원 땅이 외형상 종중 소유로 돼 있기는 하지만 1920년대 종손이 자신의 조상에게 증여한 땅인 만큼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던 중 판서공파 종중원들은 지난 2000년 종중소유의 재산을 정리하다 해당토지가 종중소유로 돼 있는데도 김씨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땅을 점유해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땅을 반환할 것과 밀린 임대료를 지급할 것을 김씨 측에 요구하게 됐다.

재판 과정에서 김씨는 조상 대에 이미 증여가 이뤄졌을 뿐 아니라, 설령 증여가 없었다고 해도 수십년간 토지를 점유, 취득시효 20년이 완성된 만큼 과수원은 자신의 땅이라면서 소유권 인정을 요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또한, 김씨는 자신의 부친이 야산을 개간해 과수원을 조성한 만큼 종중이 소유권을 빼앗아 간다면 개간비용과 이자를 내놓아야 한다고 반발했다.

1심 법원은 땅의 소유권은 종중에 있고, 김씨 측이 밀린 임대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하면서도 김씨 측이 야산을 개간해 과수원을 조성한 만큼 그 비용(유익비)를 종중이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유익비란 물건을 개량해 가치를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비용을 말한다. 이 사건에서는 임야에서 과수원으로 토지의 지목이 변경됐기 때문에 토지를 개간하는데 들었던 비용이 유익비가 된다.

2심 법원 역시 1심과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다만, 1심에서 임대료와 유익비를 각각 따로 계산해 원·피고가 서로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데 반해 2심은 상호 지급액을 상계한 다음 차액인 2억여원을 김씨가 종중에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김씨가 무단 점유한 땅은 종중 소유’인 만큼 해당 토지를 종중에 넘겨주고 최근 10년간 지급하지 않은 임대료를 지급하라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김씨가 그간 해당토지를 경작하며 자신의 돈으로 개간을 하는 등 토지의 가치를 증가시키는데 기여한 만큼 밀린 임대료 가운데 개간비용(유익비) 만큼을 공제해야 한다는 원심판단도 정당하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유익비(개간비용) 산정에 잘못이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 다시 재판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장용진 기자 ohngbear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