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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청사관복(請賜冠服) 외교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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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송명견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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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교사에는 청사관복(請賜冠服)제도라는 굴욕적인 대목이 숨어있다. 중국에다가 “당신네 나라의 신하가 돼 조공을 바칠터이니 그 증표로 우리 왕과 관리들이 머리에 쓸 관과 입을 옷을 하사해 주시고, 대신 우리의 안위를 지켜주십시오”한 내용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잦은 침략으로 골머리를 앓던 신라가 진덕여왕 2년(648년),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 이 같은 조건을 제시하고 청병외교(請兵外交)를 성사시켰다. 그때 김춘추가 하사받아 온 옷은 당나라 조정에서 입는 옷과 같아도 등급이 달랐다. 당나라의 서열 3번의 옷을 우리나라 서열 1번인 왕이 입는, 기분 나쁜 순서에 따라 관복을 받아왔다. 그들의 신하나라라는 의미였다. 이 제도는 조선왕조 때까지 계속됐다. 중국, 그 넓은 땅에 군웅이 할거하던 고려전기에는 송 외에도 거란과 여진 쪽에서까지 서로 “너희는 우리 신하”라며 각각 관복을 보내오는 웃지 못할 사태도 있었다.

조선왕조 때는 청사관복이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명나라가 우리왕의 사이즈를 고려하지 않고 옷을 보냈기 때문에 옷이 맞지 않아도 ‘황은’이 손상될까봐 늘이거나 줄여 입지도 못했다. 또 몇십 년 동안 옷이 오지 않아 옷이 너덜너덜 헤져도 그대로 입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명나라가 기울어가고 청나라가 중국을 평정할 쯤에도 조선은 옷을 내려주던 명나라에만 충성을 다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1637년 2월, 청나라의 괘씸죄에 걸려 꽁꽁 얼어붙은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 태종 앞에서 삼궤구고두(세번 무릎을 꿇되 한번 꿇을 때마다 이마를 세 번씩 땅바닥에 대는 항복의식)를 하는 유례없는 치욕을 기록했다. 그때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만의 우리백성들이 끌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되돌아온 아녀자들을 사람들은 환향녀(還鄕女)라 부르다 화냥년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들의 가정과 삶이 사정없이 무너진 비극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게 다 외교를 잘못한 탓이었다.

요즘 미국과 중국과의 외교를 말하면서 명나라와 청나라를 비유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물론 미국이 명나라처럼 지는 해가 아니고 중국도 청나라처럼 뜨는 해도 아니다. 무작정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친구나 영원한 적은 없다. 있어서도 안된다. 미국에 사드나 전략무기 다량구매 같은 선물을 줬다고 해서가 아니라, 중국과의 교역량이 미국과 일본을 합한 교역량보다 훨씬 많고, 지정학적인 고려도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눈 크게 뜨고 폭넓게 살피는 외교가 필요한 때다. 일본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도 있을 듯싶다. 일찍이 조선이 안에서 문을 꼭꼭 잠근채 청나라에만 의지하고 있을 때, ‘왜놈’으로 깔보던 저들은 문을 활짝 열고 힘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오늘날 떵떵거리고 있다. 폭넓게 살펴 일찍 시작했던 게 주효했다고 본다.

세계는 바야흐로 국익 우선 추구의 시대다. 우리의 혈맹이라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 도착 제일성(第一聲)이 우리의 안보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일자리 때문에 한국에 왔다”고 했다. 어느 한쪽에만 ‘청사관복외교’를 조아려서는 안 된다. 외교도 시장도 다변화하는 게 좋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므로 강해지기 위해서도 그렇다.

송명견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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