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국에서는 여전히 현안이지만…간섭하고 방관하고 숨겼던 미국의 민낯
미국에서 기밀 해제된 문서는 다른 나라의 정치 지형도 요동치게 만든다. 미국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해왔기 때문이다. 때론 미국에서는 이미 지난 역사로 여겨지지만 당사국에서는 여전히 폭발력 있는 현안에 대한 기밀이 공개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가 대표적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올해 초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 기밀 해제 문서 가운데 당시 북한의 정세를 보여주는 문건이 있었는데 여기엔 국내 보수 세력 일각에서 제기하는 '북한군 광주 투입설'을 일축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또 미국 언론인 팀 셔록은 1979년부터 1980년 사이의 미국 정부 기밀문서를 연구해 미국이 5·18 당시 공수여단이 발포권한을 승인받은 사실을 알고도 이를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 문서 중에는 전두환 신군부가 미국 쪽에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폭도들의 강제 동원이라고 하는 등의 거짓 정보를 흘렸다는 내용도 있었다.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 칠레의 피노체트도 미국과 관련이 있었다. 1973년 피노체트는 쿠데타를 일으켜 선거에 의해 대통령이 됐던 살바도르 아옌데를 살해했다. 공개된 CIA의 문서에 따르면 사회주의자인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칠레의 경제 위기를 만들라고 CIA에 지시했고 쿠데타를 기획했으며 피노체트가 권력을 잡자 그를 지지했다. 당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전화 녹음까지 있었는데 그는 "미국이 쿠데타를 도왔다. 최선의 조건을 만들었다"고 했으며 3년 뒤 피노체트에게는 "우리는 당신을 지원한다. 당신은 아옌데 정권을 붕괴시켜 서방 진영에 큰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지원한 피노체트 정권은 칠레에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공식 기록만 봐도 3197명이 숙청됐다. 실제로는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자는 1000여명 이상이고 10만 명이 고문으로 불구가 되고 100만 명이 국외로 추방됐다. 피노체트는 2006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채 사망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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