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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3]툴(the T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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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랄루스 표지 안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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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오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난해한 가사가 펼쳐내는 독창적인 세계관과 철학, 독특한 시각 이미지를 집적한 뮤직 비디오와 앨범 아트, 현란하고 복잡하고 혼종적인 음악. 이 세 요소의 결합 결과, ‘도구/물건’의 음악은 구성적(構成的) 내용 특성에 가 닿은 후, 곧이어 구상적(具象的) 형식미를 획득하는 국면으로 ‘변형/변태’(metamorphosis)한다. 그들은 우리를 기이한 상상의 세계로 데려간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적인 인기가 없는 프로그레시브 메탈(progressive metal) 밴드 툴의 음악을 지칭하는 명사들은 평자와 청자에 따라 제각각(얼터너티브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락, 헤비 메탈, 뉴 메탈 등등)이다. 지칭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진보적이고 단독적인 음악의 창조자들이다. 툴과 나의 동반 과정에 있었던 삽화 몇 개를 떠올려본다.
에피소드 1 : 2006년 8월 15일. 광복절. 태극기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많이 보였다.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콘크리트가 내뿜는 방사열이 지글거리고 있었다. 정각 18시. 툴의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스팅크피스트(Stinkfist)〉였을 것이다. 잔디밭에서 김밥을 먹던 우리 일행은 달음박질하기 시작했다.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툴의 음악. 반응이 없었다. 보컬리스트 메이너드 제임스 키넌(Maynard James Keenan)이 관중에게 물었다. 우리가 누구지? 우리가 누구지? 조용했다. 다시 그가 말했다. 우리가 툴이라고! 툴의 네 번째 앨범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후였지만 한국 청년들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오프닝 공연자 툴이 아니라 메탈리카(Metallica)였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툴의 라이브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에피소드 2 : 그들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라테랄루스(Lateralus)》 발매 후. 대학로 비어할레의 송년 모임에서 만난 후배 시인 정재학이 말했다. 형, 내가 생각하기에 툴이 너바나(Nirvana)보다 더 위대한 것 같아. 뭐라구? 그게 말이 되니. 절대로 그렇지 않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 그때 나는 툴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정재학은 툴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나보다 더 많이 들었던 상태였고, 나는 툴 따위가 뭔데 요절한 커트 코베인(Kurt Cobain) 위에 올려놓느냐며 조금 분개했지만, 음악 고수 정재학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나는 그들의 앨범을 구입했고, 곧, 툴이라는 블랙홀에 흡입될 수밖에 없었다.

에피소드 3 : 시인 조연호 역시 툴을 사랑했다. 그는 툴의 1집 《저층역류(Undertow)》에 실린 곡 〈술이 깬(Sober)〉을 무한반복해서 들었다고 말했다. 그와 나는 동갑이었지만 그는 나의 음악 선배였다. 그는 기타와 시타르 연주자였다. 그가 투덜댔다. 툴의 음악을 기타로 연주할 수가 없어. 아휴, 미치겠다. 이유는? 그가 힘주어 말했다. 리듬 말야, 리듬이 너무 어려워. 서너 해 연습해야 될 것 같아. 툴을 좋아한다는 동지의식 팽창. 의기투합. 홍대 앞 어느 바에서 술을 많이 마시고 안주를 비싼 것으로 먹는다는 조건으로, 툴의 앨범 네 장을, 이어드럼(고막, eardrum)을 꽝꽝 두드리는 볼륨으로, 진지하게, 맘껏, 들었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툴의 네 번째 앨범 《일 만 일(10,000 Days)》이 나온 지 11년이 지났다. 첫 앨범은 1993년, 두 번째 《애니마(Ænima)》는 1996년, 《라테랄루스》는 2001년에 발매되었다. 20년 넘는 활동 기간 동안 달랑 네 장밖에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 기다리다가 포기했다. 정말로 과작(寡作)이다.

그들의 음악은 어렵다. 싱글 〈라테랄루스〉는 작사와 작곡에 피보나치(Fibonacci) 수열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9/8→8/8→7/8 박자로 반복되는 곡의 구조에서 ‘987’은 피보나치 수열의 17번째 숫자이다. (피보나치 수열의 예 :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피보나치 수열은 0과 1로 시작하며, 다음 피보나치 수는 바로 앞의 두 피보나치 수의 합이 된다. (피보나치 수열의 개념은 위키피디아를 참조.) 가사의 음절 수 역시 피보나치 수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기타리스트 아담 존스(Adam Jones)가 창조해낸 독창적인 시각디자인은 또 어떠한가. 차원분할도형 프랙탈(fractal)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이미지 역시 피보나치 수열과 관계있다.

툴의 음악이 낯설고 난해하게 느껴져서 거부감이 든다면, 일단 뮤직 비디오를 시청해보는 것도 좋다. 〈대리만족하는(Vicarious)〉, 〈프리즌 섹스(Prison Sex)〉, 〈균열(Schism)〉, 〈포물선(Parabola)〉 등등을 권한다. 시각적인 충격과 쾌감에 전율하게 될 것이다.

툴 음악의 중요한 특징은 다중리듬(polyrhythm)이다. 킹 크림즌과 러쉬의 진정한 후계자로 이 밴드를 꼽는 것도, 툴의 작품을 두고 우리가 ‘전위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툴의 리듬을 담당하고 있는 드러머 대니 캐리(Danny Carey)와 베이시스트 저스틴 챈슬러(Justin Chancellor). 이들이 뿜어올리는 리듬은 역동적인 그루브로 파열한다. 네 번째 앨범에 실린 〈더 팟(The Pot)〉을 들어본다. 이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4/4 박자. 저스틴 챈슬러의 베이스 솔로가 곡 전반을 주도하다가, 곡의 후반부에서 작열하는 베이스 연주가 듣는 이의 심장 박동을 상승시킨다. 숨 쉴 틈 없이 꽉 찬 베이스의 압박에 혈압이 치솟는다. 연주가 3분 정도 진행된 후 6/8박자로 변박. 40초 후에 3/8박자로, 뒤이어 3/4박자로 바뀌면서 곡의 진행은 성겨진다. 베이스는 큰 강물처럼 멈추지 않는다. 다시 4/4박자로 돌아간다. 4분 30초가 경과할 즈음, 베이스는 날개를 펼친다. 절정이 다가오고 있다. 범종처럼 울려 퍼지는 베이스. 소리 사이의 휴지가 짧고 불규칙하다. 유성(有聲)과 무성(無聲)의 순간순간이 격렬하게 뒤섞인다. 5분 40초 무렵 박자는 6/8로 움직이고, 6분이 지나면 3/8박자가 다시 끼어든다. 세 마디 후에 다시 4/4 박자로 환원. 연속적인 베이스와 드럼의 타격이 하나를 이루어 6분 30초에 급작스럽게 종결되는 구조.

툴의 시간 배치는 평면적이지 않다. 그들은 6분 동안 박자를 쪼갰다가 뭉치고, 벌렸다가 우겨넣는다. 시간의 흐름 역시 리듬에 의해 역동적으로 배치되고 조정된다. 초 단위로 분절된 채,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지나 미래로 사라지는 균질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날의 삶이 기록하는 시간이 그렇듯이, 툴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생(生)이 우리의 몸에 각인시키는 시간의 감각적 구조를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인식 주체에게 시간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사랑에 빠진 자의 몸을 관통하는 환희의 시간과 이별한 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의 시간은 절대로 같을 수가 없다. 리듬은 언제나 단 하나의 순간을 창조한다. 지금 청취한 툴의 〈더 팟〉과 어제 감상한 그 노래는, 언제나 달라서, 그 유일한 순간을 영원한 현재에 가둔다. 살아 있음을 예증하는 생명의 호흡과 리듬은 일치한다. ‘홀수박자, 다중리듬과 다중미터들의 빈번한 사용(frequent use of odd time signatures, polyrhythms and polymeters)’으로 설명되기도 하는 대니 캐리의 드럼이 저스틴 챈슬러의 베이스와 경쟁한다. 두 악기의 다른 두 리듬이 헤테로포니(heterophony)처럼 ‘전체’라는 통합체를 이룬다. 차이와 차이가 결합하여 다중리듬을 생성한다. 개인적으로 툴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들의 음악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현란한 구성과 연주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원한(The Grudge)〉이 ‘세 번째 눈’을 뜬다.

(……)
그것을 주춧돌처럼 단단히 고정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너의 거부를 정당화하고 그들을 고독한 종말로 이끌어라
그것을 주춧돌처럼 단단히 고정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잘못될 상태를 두려워하면서
최후의 감방

토성이 떠오른다, 1 또는 10을 선택하라
기다려라 그렇지 않으면 다시 비참해진다
(……)
―〈원한〉 부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음악은 저 공기 속의 햇빛처럼 거기에 있었다. 내 가슴 속 이 음악의 출발지도 그곳일 것이다.


장석원 약력 : 2002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을 네 권(『아나키스트』, 『태양의 연대기』, 『역진화의 시작』, 『리듬』) 출간했지만, 음악 산문집 『우리 결코, 음악이 되자』(2010, 작가)를 시집만큼 아끼고 있다. 모든 종류의 음악을 사랑하는 황봉구 시인에게 지난 여름 King Crimson의 1집 LP를 선물 받고는, 작은 턴 테이블을 구입,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레코드를 다시 듣게 되었다. 벽장 속에 방치되어 있던 검은 비닐 재질 음악 저장 장치를 불빛 아래로 가져온 후, 음악의 나라에 다시 살기 시작했다. 현재, 광운대학교 국문과에서 학생들에게 시와 시론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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