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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언덕길/권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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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똥구리가 소똥을 굴린다.
 온 힘을 다하여
 소똥을 뭉쳐 안간힘을 쓰다가

 언덕 아래로 놓쳐 버린다.
 쇠똥구리는 희망처럼 아득한 길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반겨 주고 기다리는 식구들이
 살아갈 집 한 채 짓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식식대는 황소가 거품을 물고
 싸 놓고 지나간 똥이
 징검다리에 놓인 까만 돌처럼 드문드문한
 망초꽃 하얗게 핀 시오 리 길.

 
■나 어릴 때 친구들이랑 철둑길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다가 철둑길 옆 망초랑 개망초랑 나랑 너랑 누가 누가 더 자랐나 키 재기하다가 잠자리도 잡고 메뚜기도 잡고 호랑나비 한참을 따라다니다가 미루나무 쭈욱 늘어선 신작로가에 퍼질러 앉아 괜히 잔돌이나 저쪽에다 자꾸 던지다가 그러다가 쇠똥구리를 보면 잔가지나 강아지풀로 동글동글 쇠똥 뺏어 굴리다가 에구 더러워 그만 시들해지면 내일 또 노올자 그러면서 파란 대문 녹색 대문 친구들아 안녕 나무 대문 속으로 엄마 치마 속으로 쏙쏙 들어가곤 했더랬는데. 미안하다, 쇠똥구리야. 그땐 정말 몰랐었다. "망초꽃 하얗게 핀 시오 리 길", 자식 키울 쇠똥 잃고 저녁 내내 우두망찰 길가에서 엉엉 울었을 쇠똥구리야.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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