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11일 저녁에는 전남 여수시의 한 농촌마을에 '검은 비'가 내렸다. 30여분간 쏟아진 검은 비로 주민 300여 가구가 농작물 등 피해와 토양이 오염됐다. 빗방울이 떨어진 자리에선 납과 카드뮴 등 중금속 성분이 검출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은 비에서 검출된 흑연 등 성분과 마을 인근 율촌산단 내 폐기물업체 매립지의 그것이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분진이 초속 4.2m의 강풍을 타고 비와 함께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업체는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폴란드의 작곡가 프레드릭 프랑수와 쇼팽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우울한 시기에 홀로 빗소리를 들으며 15번째 전주곡을 작곡했다. 쇼팽은 24개 전주곡들에 이름을 달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15번째 전주곡에는 '빗방울'이란 별칭을 붙였다. 음울하게 반복되는 왼손의 반주가 빗방울을 떠올리게 해서다. '이별'이나 '고독' 같은 단어는 비와 잘 어울린다.
빗방울에는 물 말고도 많은 화학성분이 포함돼 있다. 나트륨(Na), 염소(Cl), 칼륨(K), 칼슘(Ca) 외에 암모늄이온(NH4), 황산이온(SO4), 붕산(BO2) 등이 대표적이다. 빗방울 속의 성분들은 지역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바다에 가까울수록 염소량이 많고, 내륙으로 갈수록 그 양은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해풍(海風)이 육풍(陸風)에 비해 염소량이 많은 것도 같이 이치다.
빗방울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시간은 짧다. 낙하하는 순간 다른 것이 된다. 물 웅덩이가 되고 강이나 바다에 곧장 떨어진다. 땅 속으로 스며들기도 하고, 금세 하늘로 증발되기도 한다. 각각의 빗방울이 어떤 성분을 갖고 있든 잠시 그때 뿐이다. 흘러 흘러 바다로 모이면 그저 바닷물 한 방울이다.
'붉은 비'가 외계 생명 기원설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의미는 달라진다. 빗방울 하나가 지구 생명의 씨앗이 된다. 세상을 바꾼다. '검은 비'는 정반대다. 사람도 빗방울을 닮았다. 나라가 안팎으로 어렵다. 세상에 빛이 될 지도자, 즉 세상을 바꿀 빗방울이 간절하다.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그들은 '검은 빗방울'일까, '붉은 빗방울'일까.
조영주 경제부 차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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