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풀밭과 나무를 보며 사니까 주말이 돼도 굳이 공원이나 야외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도시’를 찾아가곤 한다. 계절의 변화는 오롯이 스며든다. 마당의 눈이 녹고 누르스름한 자취가 드러나는가 싶다가 햇살이 따사로워짐에 따라 서둘러 풀들이 피어오른다.
철쭉이 피면 이제 느긋하게 봄내음을 즐기면 된다. 과장하지 않고 익숙한 아름다움으로 오래 머물러 줘서 고맙다.
이제는 횟수가 줄었지만 이사 온 첫 해에는 툭 하면 숯불을 피웠다. 손님이 찾아오거나, 혹 반찬이 마땅치 않다고 해도 그저 “불 피우자”고 했다. 고기는 프라이팬이 아니라 석쇠에 올려지는 게 상례가 됐다. 물론 요즘은 좀 뜸해지긴 했다.
설마 엉뚱한 모종을 줬으리라고야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심어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당최 저게 양배추 꼴이 될 성 싶지가 않았다. 결국 케일 모종으로 밝혀졌다! 쓴 맛의 케일을 먹는 일은 가끔이었다. 우리 가족보다 벌레들이 더 많이 먹어치웠다. 모종 가게에 대한 원망만큼이나 스스로 무안했다. 와이프는 비웃었다.
올해는 요긴한 모종을 정확히 따져서 심고 정성을 들여 가꿔볼 요량이다. 원하는 것을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작물이 올라오는 황당함을 적잖은 국민들도 느꼈을 것 같다. 일단 뿌리째 뽑아내고, 다시 잘 보고 심어야 하겠다. 엉뚱한 뿌리는 철저히 없애야 다시 엉망이 되지 않을게다. 이 나라는 시행착오를 거쳐 다시 성숙의 길을 갈 것으로 믿는다. 이 봄이, 전혀 다른 봄이 되길 바란다. 예감은 나쁘지 않다.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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