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범죄를 요즘은 '장발장 범죄'라 부르는 모양이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은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고 투옥돼 19년 징역을 산다. 그는 실정법의 잣대로 보면 범죄자다. 출옥 후 미리엘 신부의 은혜를 갚기는커녕 촛대와 접시를 훔쳐 달아나는데, 이는 가중처벌을 받을 만한 재범이다. 하지만 그는 공장에서 해고된 뒤 매춘의 나락에 떨어진 팡틴을 보듬어주고, 그녀의 어린 딸 코제트가 잘 자라도록 보살펴준다. 학생 봉기에서 중상을 입은 마리우스를 업고 캄캄한 하수구를 통과해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간다. 현실의 규범에서 때로 일탈했지만 일관되게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한 그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그는 당대의 엘리트로 자기 중책을 성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그가 떠받든 질서는 위계에 바탕한 기득권 체제였고, 그의 주님은 인간의 온기가 결여된 냉정한 기계의 우두머리에 불과했다. 학생들에게 잡힌 그를 장발장이 풀어주자 지금껏 몰랐던 빛의 세계가 열리지만, 그는 결국 자살을 택한다. 마지막 순간에 자기가 '나쁜 놈'임을 깨닫고 스스로 단죄한 것이다.
지난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대한민국 1%'의 상징이 된 우병우의 성장과 몰락 과정을 다룬 바 있다. 고등학생 시절 '부패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일찌감치 검사의 꿈을 키운 그는, 세상과 담을 쌓은 채 1등만 추구하며 공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기가 원하던 커리어를 모두 이뤘지만 '부패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초심을 잃어버렸다. 넋 놓고 위를 향해 달리느라 숱한 희생자를 만들면서 자신이 부패 사슬의 일부로 변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그는 이 나라 지도층의 핵심에 포진해 있는 '영혼 없는 공부기계'의 민낯이었다. 그의 사법연수원 동기 한 명은 "(우리 사회는) 그런 괴물이 탄생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구조"라고 지적했다.
"저 경감님은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아시나본데, 이 동네를 움직이는 건 바로 저에요."
이채훈 클래식 비평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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