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가한 재벌총수들은 대가성으로 모금에 참여한 것이 아니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부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요청을 기업이 거절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고 답하고 있다. 이런 답변은 과거 5공 청문회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답변한 "내라고 하니 내는 게 편안하게 산다는 생각이었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30년 만에 다시 벌어진 정경유착 사태에서 재벌기업들은 여전히 '대통령이 달라고 하니 줄 수밖에 없었다'는 답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지배구조협회(AGCA)가 최근 발표한 '2016년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기업 지배 구조 생태계'부문은 12개국 중 9위, '기업 실천' 부문은 12개 나라 중 12위로 꼴찌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이 아시아국가 중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강국이지만 지배구조면에서는 아시아 국가들보다 못한 후진국인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를 보는 외국인들의 시각은 한국이 아직도 대통령이 수많은 금융권이나 공기업의 인사에 관여하고 있고, 심지어는 민간기업의 인사나 경영의사결정에 까지도 압력을 가하며, 국민연금도 움직이고 있고, 이사회의 독립성은 전무한 나라인 것이다. 다행히 국제 신용평가 회사인 피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한국의 국가신용도에 미치는 중대하고도 부정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이 사태가 한국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촉발할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그런데 막상 국내에서는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과연 제대로 된 지배구조 개선이 일어날지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우리 기업들에게 필요한 지배구조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내부통제 제도의 강화이다. 이사회가 독립적이었다면 아무리 대통령의 압력을 받은 재벌 총수가 미르재단에 돈을 기부하려고 했더라도 사재는 몰라도 회사의 돈을 주는 것은 이사회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재벌기업들이 외국의 글로벌 기업들과 다른 점이다. 다시 말하면 선진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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