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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섬진강 재첩국의 추억

최종수정 2020.02.12 11:37 기사입력 2016.12.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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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첩국 사이소~ 썬하고(시원한) 뽀얀 섬진강 재첩국이 왔어예. 오늘 새벽 마악 잡은 재첩으로 끓인 섬진강 재첩국이 왔어예. 재첩국 사이소~재첩국!"
 40여년 전만 해도 새벽이면 흔히 들을 수 있던 경상도 아낙들의 목소리다. 정성껏 끓인 재첩국을 이고 골목골목을 누볐던 재첩동이에는 고단했던 당시의 삶이 가득했다.

 재첩은 나에게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졸업식 때 처음 먹었던 짜장면과도 같은 오래된 기억이다. 국민학교를 다니며 진주 망경산 자락에 살던 시절.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재첩국 사이소" 라는 소리가 창문을 넘어왔다. 잠결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그 소리에 엄마는 방문을 열고 나가셨다. 눈을 비벼 뜨고 일어나면 뽀얀 국그릇이 밥상에 있었다. 출근 준비를 끝낸 아버지는 "썬하다 빨리 무라" 며 눈곱도 떼지 않은 아들 손에 숟가락을 쥐어 주셨다. 국물을 목구멍으로 넘기자, 비린 듯 짠 듯 먹어본 적 없지만 익숙한 맛이 목젖을 타고 내려갔다.
 중학교 때 어느 봄날, 소풍을 땡땡이(?) 치고 친구와 섬진강변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당시 섬진강은 발에 밟히는 게 모두 재첩이었다. 소쿠리를 강물에 담그고 모래를 이리 저리 휘저어 주면 재첩이 한가득 잡혔다. 그 재미에 하루 해가 다가도록 섬진강을 쏘다녔다. 수북하게 쌓인 재첩바구니를 엄마에게 내밀며 "아버지 끓여 드려"라며 땡땡이 친 미안함을 대신했다.
 그 이후 재첩을 잊고 살았다. 집을 떠나 서울생활을 하면서 재첩국 대신 순댓국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서울에서 섬진강 재첩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지난 주말 섬진강을 끼고 19번 국도를 달렸다. 산을 넘지 않는 유순한 강을 따라 길은 곡선을 그리며 이어졌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재첩이 눈에 들어왔다. 섬진강에서 재첩국 장사를 한 지 50년이 넘은 한 식당에 차를 세웠다. 하동 재첩국의 종가라 불리는 집이다. 나이 든 주인장에게 재첩국(8000원)을 청했다.
 재첩은 강조개, 갱조개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재첩이란 이름이 주는 경쾌함이 작은 모양새와 가장 잘 어울린다. 단백질, 칼슘, 비타민 등이 많아 조개류의 보약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재첩은 눈을 맑게 하고 피로를 풀어주며, 간 기능을 개선하고 위장을 맑게 한다'고 적혀 있다.

 알맹이는 회무침이나 전을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재첩 하면 부추가 곁들여진 재첩국이 우선이다.
 그릇째 들어 국물을 마셨다. 손톱만한 재첩이 내놓은 살에서 나온 뽀얀 국물이 편하게 위장을 훑고 내려간다. 종가집의 명성은 기대만큼 시원하고 맛있다. 별다른 양념 없이 소금 간에 부추향이 더해졌을 뿐인데, 감칠맛이 남다르다. 뜨거운 국물에도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남해바다와 맞닿은 섬진강만이 낼 수 있는 그런 맛이다.
 주인장에게 포장을 부탁했다. 아버지가 생각나서다. 섬진강에서 고향집은 차로 30분 거리다. 출장길이지만 잠시 다녀와야겠다. 늦은 밤 느닷없이 집을 찾은 아들을 아버지는 반가움과 걱정스러운 얼굴로 맞아주셨다.
 재첩국 한 그릇을 데워 상에 내놓았다. 아버지는 재첩국을 내려 보시다 "예전에 니 엄니가 새벽이면 재첩국을 사서 데워 주곤 했는데…." 더 이상 말씀을 잊지 못하신다. 병원에서 투병중인 어머니가 못내 마음에 걸리신 게다.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숟가락을 집어 드렸다. 겨우 한 모금에 "썬하다 무봐라" 며 아들 앞으로 국을 밀어주신다. 마음이 울컥해진다. 그동안 세상살이 팍팍하다고, 일이 바쁘다고, 멀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한 죄스러움에 식어가는 재첩국만 바라봤다.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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