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관계자는 “아직까지 청와대가 조사 일정에 대해 확답하거나,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한 바 없다.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여당 국회의원 후보로 세 번 출마해 내리 낙선한 친박계 인사로 알려진 유 변호사는 이날 중 검찰의 대통령 조사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준비시간을 감안 단시일내 출석이 어렵다는 주장을 펼 가능성이 높게 관측된다.
검찰은 오는 20일로 다가온 현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구속)씨의 구속만기를 앞두고 최씨를 재판에 넘기려면 대통령 조사가 긴요하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박 대통령을 조사해야 공소제기할 때 명확한 내용이 나올 수 있다”, “(16일 이후로 조사가 늦춰지면)수사에 지장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뒷거래에 나선 의심을 받는 재계 총수들을 개별 일정까지 취소·연기시켜가며 지난 주말 줄소환하고, 구속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에 더해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을 전날 부른 것은 이 같은 맥락이다. 그간 뇌물죄 적용에 소극적이던 검찰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것도 대통령이 조사에 임하도록 압박하는 성격으로 볼 여지가 있다.
다만 검찰로서는 헌법상 형사소추 대상이 아닌 현직 대통령의 출석을 강제할 수단이 마땅찮다. 설령 조사에 응해 박 대통령이 최씨의 공범 등 피의자 신세가 되더라도 일단 기소중지 결정 후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서두를 게 없다. 지지율 한자릿수 정국에 조사에 응하면 족할 뿐 시기까지 맞춰줄 필요는 없는 데다, 탄핵·하야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굳이 최씨 공소장에 이름을 올려 스스로 위기를 키울 이유는 더더욱 없는 탓이다. 특검 도입이 무르익었으니 여러 번 조사할 것 없이 그에 응하겠다며 검찰 조사를 회피할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여야 3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전날 회동을 갖고 오는 17일 본회의를 열어 특검법과 국정조사계획서를 처리하기로 했다. 촛불 민심을 감안할 때 박 대통령이 특검법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할 가능성은 낮게 관측되지만, 가깝게는 내곡동 특검조차 국회 본회의 통과부터 법 시행까지 18일이 소요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사실상 임명권에 가까운 특검 추천권을 야당에 내준 데 대해 위헌 목소리가 나왔고, 이번 최순실 특검법 역시 야당 가운데 정의당을 배제한 두 당이 추천권을 독점한다. 포괄적인 특검 수사대상에 포함된다면서도 굳이 의혹의 정점인 박 대통령을 수사대상에 명시하지 않은 대목도 정치적 거래로 읽힌다.
특검법이 공포·시행되려면 최장 20일, 법 시행으로부터 특별검사 임명으로 수사권이 옮아갈 때까지 다시 최장 14일. 박 대통령으로서는 한 달 이상 시간을 벌 수 있는 셈이다. ‘미르·K스포츠재단과 비선 실세에 대한 검토 의견’, ‘법적 검토’ 등 청와대가 지난달 중순부터 조직적인 대응을 준비한 정황까지 불거진 상황에서 한 달은 긴 시간이다.
검찰 안팎에선 특검 도입시기 등에 대한 아쉬움도 흘러 나온다. 일선 검찰 간부는 “특수본이 나름 수사의지를 갖고 속도를 내는 국면에서 최순실, 차은택 기소 등 초벌적인 수사 결과라도 지켜본 뒤 불신을 드러내는 게 어땠을까 한다”고 말했다. “사안의 성격상 특검이 불가피해보이지만, 기본적으로 특검 수사력이 현장 검사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라는 판사도 있다.
다만 청와대 유출문건이 담긴 태블릿PC의 존재나 여·야 특검합의 등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지지부진했던 검찰 수사가 자초한 결과라는 지적도 면하기 힘들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다급한 전개속도에 비춰 검찰이 박 대통령을 조사하기에 충분하고 유의미한 단서를 쥐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자칫 면죄부만 쥐어주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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