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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만 '나'는 선택할 수 있어요

최종수정 2016.11.07 09:28 기사입력 2016.11.0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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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 작가

김수영 작가

최근 제 메일함으로 날아온 두 여성의 사연이 저를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모님의 사채, 이혼 문제로 방황하고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여고생. 자신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처절하게 노력해도 되지 않는데 부모님 잘 만나 '아무 노력 없이' 행복하게 사는 금수저 친구를 보며 자괴감을 느끼는 자신이 싫다는 20대 여성. 둘 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가난, 알콜중독 아버지, 불화로 인한 방황 끝에 뒤늦게 마음을 잡고 혼자 독학해 서울로 대학을 와서도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수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저였으니까요. 많은 기억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과외를 마치고 돌아온 곰팡이 가득한 반지하 단칸방, 아르바이트를 잘리고 오는 길에 생활비 좀 더 보내달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한참을 서럽게 울었던 순간, 면접을 앞두고 80만원짜리 정장을 아무렇지 않게 사는 대학친구를 보며 느꼈던 박탈감….

 당시의 제게 부모님은 존재 자체만으로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오죽하면 꿈목록을 썼을 때 1순위가 한국을 떠나는 것이었을까요. 그렇게 저는 해외로 떠났고 거기서 자유롭게 많은 꿈에 도전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저는 다시 부모님 곁으로 와 있었습니다. 내 집 마련에 앞서 부모님 집 마련을 먼저 했고 부모님 노후대책을 위해 미친 듯이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먹고 살 만해졌지만 끝없이 싸우고 신세한탄을 하는 부모님을 보며 화가 치밀었고 나 자신이 불쌍해 울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도 없이 고민하고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깨달은 것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모는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존재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는 우리에게 우주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이 우리를 돌봐주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죠.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는 그들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습니다. 그들의 세계가 곧 나의 세계인 셈이지요.

 부모는 자식에게 두가지 유산을 남겨줍니다. 첫 번째는 경제적 유산이죠. 건물을 주는 부모도 있지만 빚을 물려주는 부모도 있습니다. (다행히 빚은 상속포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내 삶을 포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나의 삶과 부모의 삶은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마치 신체와 마음의 일부가 부모에게 묶여 있는 것처럼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게 되지요.

 부모가 줄 수 있는 정말 중요한 것은 정신적 유산입니다. 우리는 20년 동안 부모와 함께 살면서 그들과 비슷한 세계관과 감정의 지형을 형성해 나갑니다. 성숙한 부모에게 사랑받으며 자랐다면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건강한 사람으로 클 확률이 높지요. 반면에 자식을 자신과 분리시키지 못하고 조종하는 부모, 술이나 도박에 중독된 부모, 아이를 신체적, 언어적, 성적으로 학대하는 부모, 아이에게 어른 역할을 기대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면 아이는 자기 스스로에 대해, 또 세상에 대해 건강한 생각을 갖기 힘듭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완벽한 인간도, 완벽한 부모도 없기에 우리 모두에겐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심한 경우 무의식에 남은 트라우마가 우리의 발목을 계속 붙잡습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과도하게 무리를 하고, 타인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내가 당한 것처럼 내 아이를 학대하는 등 익숙한 고통과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지요. 나이가 50,60살이 되고, 부모가 세상을 떠났어도, 우리 스스로 그들의 부정적인 정신적 유산을 끊어내지 않으면 평생 그 자리를 맴돌게 됩니다.
[여성칼럼]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만 '나'는 선택할 수 있어요

 저의 경우 부모님이 물려주신(?) 경제적 결핍을 극복했던 것보다 정신적 결핍을 넘어서는 데 훨씬 더 깊은 치유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이제는 부모님을 포함한 다른 누군가가 뭐라 하든 저는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내 마음이 나만의 것임을 선택하고 타인에게 내 마음을 휘두를 권리를 주지 않으니까요. 이렇게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데 10년, 내 마음의 주인이 되기까지 5년, 자그마치 15년이 걸렸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이제야 저는 독립된 한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운이 나쁘면 20년을 고통 속에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용기 내어 내 삶의 결핍과 상처를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여 내 삶과 내 마음의 주인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평생을 그들에게 끌려 다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나'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김수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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