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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대통령, 참모 그리고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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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철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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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를 평가하는 툴로 한때 '똑부'와 '똑게', '멍부'와 '멍게'류의 방식이 회자된 적이 있다. 가로축에 '똑똑하다'와 '멍청하다'를 두고 세로축에 '부지런하다'와 '게으르다'를 둔 다음 각각을 연결시켜 상사의 4가지 유형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최고의 상사는 '똑똑하지만 게으른 상사(똑게)'라는 게 반전이다. 미주알고주알 간섭하지 않고 성과를 내는 리더형이란다.

그렇다면 참모, 즉 부하직원을 평가하는 데도 이 같은 툴을 한번 대입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가로축은 '똑똑하다'와 '멍청하다'. 세로축은 '상사의 말이라면 납작 엎드리는 부하 직원'(편의적으로 '예스맨')과 '상사의 지시라도 할 말은 하는 사람'(역시 편의적으로 '까칠맨')이다. '똑똑한 예스맨(똑예)'과 '똑똑한 까칠맨(똑까)', '멍청한 예스맨(멍예)'과 '멍청한 까칠맨(멍까)'이라는 네 가지 유형이 나온다.
'똑똑한 예스맨'과 '멍청한 까칠맨'은 논외로 하자. 조직에서 출세하거나 조직을 나가게 될 것이다. 문제는 '똑까'와 '멍예'인데, 누가 상사에 도움이 되는 참모요, 부하직원일까?

중국 전국시대에 가장 뛰어난 군주로 알려진 위나라의 문후(文侯)에 얽힌 일화 한 토막. 문후는 50년이라는 긴 재위기간 못지않게 뛰어난 치적을 쌓은 성군이었다. 어느 날 신하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문후가 물었다. "여러분은 나를 어떠한 군주라고 생각 하시오." 신하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폐하는 참으로 성군이십니다." 그러나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인 적황(翟璜)은 "폐하는 절대로 어진 군주가 못되십니다. 폐하는 중산국을 정벌해 그 땅을 얻었는데, 그때 폐하의 아드님을 왕으로 봉하셨습니다. 이는 어진 군주가 하실 일이 아닙니다. 폐하는 가끔 일을 그르치기도 하시고 사람을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있으십니다."라고 답했다. 문후의 낯빛이 바뀌었다. 문후는 노기를 드러내며 적황에게 물러가 있으라고 명했다. 다음 순번인 임좌(林座)에게 문후가 물었다. "그대는 나를 어떤 군주라고 생각하는가." 이 물음에 임좌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폐하는 참으로 어진 군주이십니다."

"조금 전 적황은 나를 비난하여 어진 군주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나를 어진 군주라고 하는가. 나를 두려워함인가."라고 문후가 다시 임좌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폐하는 분명 어진 군주이십니다. 예로부터 어진 군주 아래에는 충직한 신하가 있는 법입니다. 조금 전 적황은 충직한 신하로서 할 말을 다 했습니다. 이처럼 충직한 신하가 있으니 어찌 폐하를 어진 군주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임좌의 대답이었다. 문후는 임좌의 말에 무릎을 쳤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깊이 뉘우치고 적황을 다시 불러 그에게 보다 높은 벼슬을 내렸다.
적황은 아마도 '까칠맨'이었지 싶다. 절대군주 앞에서도 할 말은 했다. 까칠한 부하직원, 대놓고 하는 '옳은 소리'가 불편한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군왕의 심기를 살피는 신하들로 둘러싸인 임금이라면 오죽하랴? 이 불편함을 극복한 것이 문후의 탁월함이요, 리더십이다.

최순실씨로 세상이 시끄럽다. 대통령이 사과하는 상황까지 왔다. 국민들의 마음도 참담하다. 시중에선 "왜 대통령 주변엔 직언하는 참모가 없느냐", "자기 직을 걸고 할 말을 하는 국무총리나 비서실장이 아쉽다"는 말들이 나온다.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참모들의 책임이 무겁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참모들의 비겁함까지 리더의 책임이다. 대통령의 사과엔 "순수한 마음으로 했다"는 변명만 있을 뿐 "내 잘못이다"라는 책임이 없다. 문후의 그릇이 있었기에 적황이 나왔던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이의철 금융부장 charl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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