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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패럴림픽에서 배우는 스포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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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올림픽 타령이냐고? 천만에 말씀. 리우 올림픽은 이제 막 끝났다. 많은 사람들은 에티오피아의 마라토너 페이사 릴레사가 자신의 종족이 처한 처참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결승선에서 두 손을 엮어 하늘로 치켜든 장면을 이번 올림픽의 마지막 장면으로 기억하겠지만 이 은메달리스트의 숭고한 저항은 리우 올림픽에 있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였다. 9월8일 리우 패럴림픽이 개막했기 때문이다. 총 159개국 4342명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패럴림픽이다. 개막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에 비해 이번 패럴림픽은 경기 운영이나 흥행에서 극찬을 받았다. 올림픽이 패럴림픽의 테스트 이벤트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11개 종목에 81명의 선수가 참가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팀도 최선을 다했다. 메달의 숫자나 색깔에 상관없이 자신의 한계를 딛고 온몸을 던진 그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리우 패럴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어쩌면 스포츠를 통해 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보여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각 선수마다 가지고 있는 장애를 품고(위에서는 '딛고'라는 표현을 썼지만 '품고'라는 쓰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최고를 향한 몸의 향연을 펼쳤다. 10세 때 두 팔을 잃은 이집트의 탁구선수 하마투는 맨발로 탁구공을 허공에 띄워 서비스를 한다. 라켓은 그의 입에 물려있다. 2패를 하고 경기장을 떠났지만 아무도 그의 저조한 성적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 안에서 그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이를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레떼'라고 불렀다)을 이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절단된 선수가 의족을 신고 넓이 뛰기에 도전하고 앞이 안 보이는 선수가 가이드의 소리에 의존해 트랙을 질주한다. 이미 한 번 좌절한 몸을 일으켜 세워 세상으로 끌고 나온 패럴림픽 선수들은 그들을 지켜보는 수많은 이에게 소리 없는 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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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 볼트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단거리 선수다. 정확히는 100미터를 가장 빨리 이동하는 인간이다. 냉정하게 육상 100미터 종목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출발선과 결승선을 그어 놓고 신호를 주면 죽어라고 뛰는 게 다다. 그들이 뛰고 있는 100미터라는 거리도 95미터나 105미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임의의 거리를 정해놓고 10초벽을 깼느니 마의 9.5초라는 말 자체가 실상 별 의미가 없다. 그가 임의의 100미터를 달린 기록이 9.7초든 9.6초든 아님 8.9초든 뭐 그리 대순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의 기록경신에 열광한다. 왜일까?

우사인 볼트가 100미터 기록을 0.01초 줄일 때 그는 전 인류를 대표해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빠르기의 한계를 조금 더 위로 밀어 올린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의 몸으로 완벽이라는 신의 영역에 가장 근접한 것이다. 고대 올림픽 우승자의 머리 위에 월계수 잎 화관을 씌워준 이유다. 신의 간택을 받아 신에 가장 가까워진 인간이기에.

올림픽 선수들의 최고를 향한 질주에 담긴 의미가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인류를 대표해 몸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이루는 데 있다면 패럴림픽 선수들의 질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가치를 웅변한다. 엄밀히 말해 우리는 모두 미래의 예비 장애인이다. 장애의 경중과 부위는 다르겠지만 지금 장애가 없다고 생각(혹은 착각)하는 누구나 결국 장애인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올림픽 선수들이 현재의 인류를 대표해 경기를 하고 있다면 패럴림픽 선수들은 (각 개인이 당면할) 미래의 인류를 대표해 우리가 겪을 다양한 종류의 한계를 미리 걷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땀에 담긴 스포츠의 신성한 가치다.
추석연휴 마지막 날 일요일 오후 막내와 함께 수영장에 와 수영을 하다가 선천성 뇌병변으로 마비된 하체를 끌고 자유형 3관왕에 오른 조기성 선수를 떠올렸다. 수영을 하면 걸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처음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기대처럼 비록 다시 걷진 못했지만 물 위에서 그는 오히려 날아올랐다.

정용철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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