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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포럼]동물의 이동-자연의 씨줄과 날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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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빈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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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가 지속되고 연일 최고 기온을 갱신한다는 소식과 함께 올 여름 우리의 생활은 유난히 뜨겁고 무기력했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스위치 한 번으로 무더위를 날려 버릴 수 있고 시원한 장소로 몸을 피할 수도 있다. 특별한 장소와 시간을 선택해 먼 곳으로 피서를 떠나고 돌아오기도 하는데, 우리가 만드는 긴 이동행렬이 고속도로에 나타나는 시기도 이 한여름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긴 이동행렬을 만드는 생물이 지구상에 인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과 풀을 찾아서 약 3000 km를 끊임없이 이동하는 생물, 바로 아프리카의 누(wildebeest)가 대표적인 이동하는 초식동물이다. 150만마리의 누 떼와 50만마리의 얼룩말과 다른 초식동물 떼가 만드는 아프리카의 장대한 대이동의 목적은 먹이 확보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새끼를 낳는 것이다. 포식자, 넓은 강, 목마름, 노화 등 야생의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시련과 역경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새끼를 낳고 안전하게 기르려는 본능을 막지 못한다. 어미 세대의 생존은 다음 세대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세대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이동은 지구에 큰 이변이 없는 한 자연계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물의 대이동은 육지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늘과 바다에서도 동물의 대이동은 보이지 않는 복잡한 연결고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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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이동하는 동물들은 단순히 먹이를 찾고 번식을 위해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동하는 과정에서 다른 동물들, 다른 식물들과 또 다른 관계를 맺어 촘촘한 자연의 그물을 만들어 준다. 풍성한 곡식지대, 개미들의 짝짓기, 투구게의 산란 등 평소에는 전혀 연관이 없던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하는 자연의 이벤트에서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동물들은 충분한 에너지를 섭취하고 남아 있는 이동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서로 얽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해수 염분의 미묘한 차이는 북적도 해류의 흐름을 변경시킬 수 있고 동북아시아로 흘러 들어오는 실뱀장어의 양을 급격하게 감소시킬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뱀장어 시장경제에 큰 여파를 몰고 올 수 있다. 이처럼 자연은 인간의 활동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은 더 심각하다. 지구 곳곳에서 행해지는 인위적인 방목과 장대한 도로 건설 등은 극한 지역에 서식하는 초식성 동물의 먹이와 이동경로를 차단시켜 힘든 여정을 더욱 고되게 만든다. 자연에서 이동은 단순한 일방통행이 아니다.
간단한 먹이사슬 구조에서 어느 한 구성원의 불균형은 그 사슬을 구성했던 모든 생물의 절멸을 초래할 수 있다. 반면 먹이사슬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먹이그물은 불균형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완충시스템이다. 충분히 탄탄한 먹이그물을 유지하는 자연에서 시간이 지나면 불균형은 회복되어 안정된 생태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수억 년 동안 멸종과 적응을 반복하면서 현재 지구 환경에 어울리는 삶을 생물들은 갖게 되었다. 그것이 멀고 힘겨운 여정을 동반하는 삶이라도, 그들의 생존을 위한 경이로운 여행은 지구 생태계를 끈끈하게 연결하는 그물의 씨줄과 날줄과 같다. 온전한 그물은 아주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지만 한 올, 두 올 끊어진 그물은 터져 버리기 마련이다. 지구 생태계의 씨줄과 날줄은 인간의 무분별한 간섭에 의해서 하나둘씩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아니 이미 끊어진 것도 있다. "인간이 기후를 함부로 변화시키고 있으니, 미래의 세대에게 예측 불가능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200여년 전의 훔볼트의 경고는 아쉽게도 지금 우리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동물처럼 생존을 위해서 주기적으로 특정 장소로 멀리 이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물들이 유지하는 자연의 씨줄과 날줄을 보호하는 것만큼 우리가 만드는 인간세상의 그물도 탄탄하게 유지해야 한다. 서로 안녕한지 돌아보는 여유로운 마음이 많을수록 우리 주변의 동물과 환경들이 안녕한지 돌아봐 줄 것이기 때문이다.
황학빈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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