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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인질범/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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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을 쓰던 의자를 내다 버리는 아침
세상도 버려 온 내가 가구 따위를 못 버릴 리 없으니까,
의자를 들고 나가 놓아준다

의자도 버리는 내가,
십 년을 의자에 앉아 생각만 했던 사람을
버리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사람도 안고 나가 놓아준다
이것은 너른 바깥에 창살 없는 새 감옥을 마련해 주는 일
이제 그만 투항하여
광명 찾자는 일

늙은 의자는 초록 언덕 아래로 실려 가고
고운 얼굴, 풍악(風樂)처럼 공중을 날아간다

잘 가라, 탈출이라곤 모르던 인질아
인사하면
잘 있어라, 포기라곤 모르던 인질범
답례하며
사정을 말하자면,
내게는 겨우 새 의자가 하나 생겼을 뿐이다
사정을 숨기자면,
다시, 투항이라곤 모르는 인질범이 되었을 뿐이다
 
[오후 한詩]인질범/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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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인질범이고 누가 인질인가? 내가 인질범이고 의자가 인질인가? 시를 읽어 보면 그런 듯하다. 그런데 꼭 그럴까? 십 년이다. 지난 십 년 동안 오늘 내다버린 의자에 앉아 밥도 먹고 책도 읽고 일도 했다. 그리고 그 사람 생각도 했다. 처음에는 매일매일이었지만 석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오 년이 지날 즈음엔 해 저무는 서녘 하늘의 먹장구름처럼 가끔 불현듯 그 사람 생각이 엄습했다. 의자는 그럴 때마다 가만히 나를 불러다 제 등 위에 앉혀 놓곤 했다. 아니다. 의자에 앉아 있다 보면 그 사람 생각이 꾸역꾸역 밀려왔다. 누가 인질범인가? 나인가, 그 사람인가, 의자인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우리를 꼭 붙들고 놓아주질 않는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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