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줄여나가는 데 있어 합법적인 꼼수가 하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빚을 줄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만약 5억원짜리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비율(LTV) 60%로 3억원을 대출받았다고 치죠. 1년 동안 연 이율 3%로 이자만 갚았다고 할 때 총 부담액은 900만원입니다. 그런데 집값이 1년간 10% 뛰어 5억5000만원이 됐다면 똑같이 3억원 대출을 끼고 있어도 LTV는 54.5%로 내려갑니다. 그만큼 원금이 줄어든 겁니다.
전반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적당히 일어나면 이같이 빚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1930~1950년 사이 독일의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17%에 달했습니다. 이 기간 중 거의 300배나 오른 겁니다. 전후배상금으로 골치를 앓던 독일은 막대한 인플레이션 덕분에 20세기에 다른 어떤 국가보다 공공부채를 많이 줄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국민들의 고통이 따르지만 정부로서는 인플레이션으로 부채를 줄여 재정문제를 푼 겁니다.
가계부채가 1200조원은 넘은 상황에서 저성장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 당장 나가는 이자부담이 작더라도 원금이 줄어들지 않고 때로는 자산가격 하락으로 빚이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물가를 보면 우리나라는 작년 12월에 0.7%로 사상 최저를 기록한데 이어 1% 넘기가 힘겨운 상황입니다. 돈의 가치가 꿋꿋이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신흥국들이 달러부채에 신음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러대비 자국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원금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저물가는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그래서 빚이 더 무섭고 사전에 통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 금융사 대출은 소구대출입니다. 내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상환능력이 없어 연체하게 됐을 때 집만 은행에 주고 빚을 청산하지 못합니다.
집을 팔아 채무를 다 못갚는다면 나머지 금액을 죽기 전까지 상환해야 합니다. 저물가 상황에서 노동소득도 제자리걸음인데 원금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니 더욱 힘들어지겠죠.
가능하면 빚을 줄이시고 저금리 유혹으로 빚을 내 투자에 나서는 빚테크에도 신중한 태도를 취했으면 합니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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