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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X파일] 남편 시체 '고무통 10년' 무죄 비밀

최종수정 2016.02.16 08:37 기사입력 2016.01.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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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미스터리 사건, '치사 농도' 수면성분 나와…남편 '자연사' 주목한 법원 판결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높이 80㎝, 지름 84㎝ 대형 ‘고무통’. 그곳에 2명의 남성 시체가 담겨 있었다. 한 명은 남편, 다른 한 명은 내연남이다. 시체를 숨겨둔 고무통은 집안에 놓여 있었고, 현장은 쓰레기장과 다름없었다. 그곳에는 8살의 남자아이가 방치돼 있었다. 그 아이는 시체 옆에서 낮과 밤을 보냈다. 미스터리의 출발점은 그 남자아이의 ‘친엄마’ A씨로부터 시작된다.

A씨는 숨진 남편 B씨의 법적인 배우자이자, 역시 숨진 남성 C씨의 내연녀다. 또 8살 아이의 친엄마이기도 하다. 이른바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고무통에 2명의 남성 시신을 방치한 것도 그랬고, 그 공간에 아이가 홀로 방치돼 있었다는 점도 충격을 몰고온 배경이었다. A씨를 향한 원색적인 내용의 비난이 쏟아졌다. 일부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었고, 사실과 부합하는 내용도 일부 있었다.

법적으로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을 둘러싼 판단은 끝이 났다. A씨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내연남과는 달리 남편 죽음의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다. A씨는 남편 살인 혐의에 대해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문제는 의혹을 고스란히 남긴 찜찜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 피고인 무기징역 구형 / 사진=연합뉴스TV 캡쳐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 피고인 무기징역 구형 / 사진=연합뉴스TV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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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을 이해하려면 A씨의 불행한 삶의 궤적을 살펴봐야 한다. 한때 A씨가 중국 동포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이다. A씨는 1985년 남편을 만났다. 2명의 아이를 낳고 살고 있었다.
A씨는 1995년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다. 집 근처 도로에서 덤프트럭이 쓰러지면서 모래가 쏟아졌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둘째 아들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A씨는 둘째 아들을 잃은 이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남편과 싸움도 잦아졌고 부부관계는 악화했다. 남편 외도로 A씨 우울증은 더욱 심화했다. 그때부터 A씨는 밤에 외국인 근로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2004년께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이유는 끝까지 규명되지 않았다. 유력한 증거는 있었지만, 확실한 증거는 아니었다. A씨는 2006년 집안에 방치됐던 그 아이를 낳게 된다. 그 아이의 친아버지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외국인 근로자다.

A씨는 2012년 다니던 회사에서 내연남을 만나 동거 생활을 이어갔다. 회사 사장은 A씨에게 남편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내연남에게 A씨와 헤어지라고 요구했다. 내연남은 헤어진 이후 A씨에게 그동안 건네준 월급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자신의 월급과 내연남 월급을 공동 생활비로 사용했는데, 뒤늦게 돌려달라고 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2013년 5월에서 7월 사이 내연남은 숨졌고, 고무통에 들어가는 신세가 됐다.

내연남 부검 결과 D성분이 포함된 수면제가 발견됐다. 검찰은 A씨가 비염약이라고 하면서 내연남에게 수면제를 건네준 뒤 이를 먹고 반항할 힘을 잃은 내연남의 목을 졸라 질식사시켰다고 보고 있다. (법원은 질식사에 대한 사실만 인정할 뿐 D성분을 통한 살인혐의는 확정하지 않았다.)

팩트는 내연남 부검 결과, D성분이 발견됐다는 점이다. 또 내연남을 대형 고무통에 넣고 보관했다는 점이다. A씨는 내연남 살인혐의가 인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18년이 확정됐다. 행위보다 형량이 약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유는 남편 살인 혐의가 ‘무죄’ 판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남편이 자고 일어나보니 숨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자연사라는 얘기다. 남편이 죽은 뒤 고무통에 보관하고 있었다는 게 A씨 주장이다. 상식에 맞지 않지만, 처벌은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가능하다. 법원의 고민도 그것이었다.

1심은 A씨의 남편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남편의 간에서 ‘치사 농도’의 D성분이 검출됐다는 게 이유다. 또 A씨 주거지에 있던 알루미늄 맥주캔, 맥주병, 컵 등에서도 D성분이 검출됐다. 특히 유리컵에는 상당한 양의 가루가 굳어져 있었는데 수면제 50정에 해당하는 D성분이 담겨 있었다.

맥주에 D성분이 담긴 수면제를 녹여서 누군가에게 줬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1심은 “(D성분의) 수면제를 가루를 내어 물이나 술에 탄 후 먹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판단했다. 내연남에게도 D성분이 발견됐다는 점에서 남편도 유사한 방법으로 살인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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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심은 판단이 달랐다. D성분 복용에 의한 단독 사망 사례는 드물다는 게 이유다. D성분은 수면보조제로 사용되는 것으로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도 주목했다. 치사농도의 D성분이 발견됐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게 2심 법원 판단이다.

또 남편 간에서 발견됐다고 하지만 10년간 고무통 속에 방치된 탓에 시체는 심하게 부패해 훼손됐고, ‘간’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될 뿐 확실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내연남 시체도 고무통에 있었다는 점에서 D성분이 섞여 있었을 가능성도 주목했다.

2심은 “사망한 지 10년이 넘어 발견된 사체를 통해 그 사인 등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면서 “(D성분이 함유된 다량의 수면제로 살해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18년으로 감형됐다. 대법원도 남편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 판단을 확정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시간이 너무 흘렀다. 남편은 죽었고,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끝이 났다. 남편과 내연남 시체를 대형 고무통에 보관한 ‘엽기적인 사건’은 법적인 판단이 종료됐다.

남편이 숨질 당시 나이는 41세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만 40~44세 남성 중 ‘원인 미상의 급사’로 인한 사망률은 인구 10만명 당 1.2명(0.0012%)에 불과하다고 한다. 남편은 정말 그 미약한 확률의 주인공이었기에 숨지는 운명을 맞이했다고 봐야 할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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