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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수다] 팥과 가마솥이 만들어 낸 공동작품, '동지팥죽'

최종수정 2015.12.28 09:21 기사입력 2015.12.2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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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팥죽 쑤기’, ‘늙은 호박죽 쑤기’, ‘두부 만들기’, ‘시래기 나물밥하기’. 올겨울에 우리 집 가마솥에서 만들겠다고 계획해 둔 나의 요리 리스트이다. 가마솥에 불을 지피기 좋은 날을 잡고 또 같이 나누어 먹을 사람들에게 미리 연락해 약속을 잡는 일까지가 계획에 포함된다. 여러 가지 음식들 중 특별히 가마솥에 하겠다고 정한 음식들은 적게 만들어서는 절대 그 맛이 나지 않고 또 단출하게 밥상을 차리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나누어 먹어야 그 맛이 더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요리수다는 동지팥죽 이야기다.

‘동지를 지내야 한 살 더 먹는다’며 끓여먹던 동지팥죽.

‘동지를 지내야 한 살 더 먹는다’며 끓여먹던 동지팥죽.

가마솥으로 만들 첫 번째 겨울 음식은 동지팥죽이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지(冬至)를 기점으로 낮이 다시 길어져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불렀다. 새해를 앞두고 동지는 큰 명절 중에 하나로 ‘동지를 지내야 한 살 더 먹는다’며 팥죽을 끓여먹었다. 붉은 팥은 액운을 막아준다고 하여 팥죽을 끓여 집안 곳곳에 뿌리면서 새해를 맞이하고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였고 팥죽에 들어가는 찹쌀 옹심이를 온 가족이 둘러앉아 빚으며 이야기꽃들을 피웠다.

그 이야기꽃에는 ‘달나라에서는 계수나무 아래에서 토끼가 절구질을 한다’고 했을 테지만 이제 달나라에 가는 세상이 되었으니 동지팥죽을 먹어야 하는 의미는 설득력을 잃어 가고 있다. 또한 긴 긴 겨울밤을 보낼 야식으로는 팥죽 보다 더 맛있는 배달 치킨, 족발, 배달 커피까지 전화 한 통이면 현관으로 도착하는 시대이니 이제 팥죽은 먹을 기회조차 사라지고 있다. 또 팥죽을 좋아해도 금방 끓일 수 있는 만만한 음식이 아니다. 편리한 가스레인지에서도 뭉근히, 오래 끓여야 하니 바쁜 요즘 사람들에게 느긋하게 집에서 끓여야 하는 동지팥죽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아래에서 절구질을 하는 토끼 보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됐다.

붉은 팥은 액운을 막아준다고 하여 팥죽을 끓여 집안 곳곳에 뿌리면서 새해를 맞이하고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였다.

붉은 팥은 액운을 막아준다고 하여 팥죽을 끓여 집안 곳곳에 뿌리면서 새해를 맞이하고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였다.

그러나 아쉽다! 동지에는 동지팥죽을 세트 구성으로 맛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립다! 새콤하게 익은 동치미와 뜨거운 동지팥죽이 만들어내는 겨울 컬래버레이션이. 그리고 그릇그릇 담아서 차게 식어 묵처럼 굳어진 팥죽을 데우지 않고 먹었던 아이스 팥죽, 나이보다 더 먹고 싶었던 말랑말랑한 찹쌀 옹심이까지. 그러니 첫 번째 가마솥 요리로 점찍어둔 동지팥죽은 동네 어르신들과 나누어 먹어야겠다. 뭉근하게 끓여서 푹 퍼진 팥에 쌀도 아낌없이 넣고 찹쌀 옹심이도 넉넉히 넣어야겠다. 동지팥죽에 관해서는 코드가 잘 맞는 어르신들과 팥죽을 먹으면서 옛날에 맛보셨던 또 다른 가마솥 요리 비법들도 전수받아야겠다.

글=요리연구가 이미경(http://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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