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의 전설'과 인수戰의 'Why Not?' 정면충돌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이정민 기자]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과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증권업계에서 보기 드문 오너 경영자인 두 라이벌은 특유의 도전 정신과 뚝심으로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역사를 다시 썼다. 증권사 영업맨 출신인 박 회장은 맨손으로 미래에셋그룹을 일궈내 국내에서 '펀드 신화'를 만들어냈다. 오너 2세인 김 부회장은 원양어선을 타는 등 혹독한 경영수업 끝에 동원증권 사장에 올랐고 이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 현재 20개 계열사를 거느린 한국금융지주를 탄생시켰다. 샐러리맨과 오너 2세, 창업과 인수합병(M&A) 등 두 사람이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달랐지만 둘 다 특유의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발전을 이끌어 온 두 라이벌은 이제 새로운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대우증권 인수의 주인공이 누가 되든 인수 후 자기자본 7조원대의 초대형 증권사로 도약할 수 있게 되는 만큼 국내는 물론 아시아 나아가 글로벌 대형 증권사로 우뚝 서겠다는 포부다.
◆승부사 박현주=박현주 회장은 금융투자업계에서 '승부사'로 통한다. 앞길이 탄탄대로인 증권사 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하고 국내에 '펀드 신화'를 만들어낸 입지전적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전남 광주 출신으로 광주제일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86년부터 증권업계에 몸담았다.
1986년 동양증권에 입사한 후 1988년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박 회장은 입사 45일 만에 대리, 1년1개월 만에 과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증권사에 몸담은 지 4년6개월 만인 1991년에는 만 32세의 나이로 최연소 지점장에 오르고 약정액 전국 1위를 달성하며 이름을 떨쳤다.
증권업계 입문 11년 만인 1997년에는 임원까지 올랐다. 박 회장이 인생 최대의 승부수를 던진 것은 이때였다. 동원증권 스타 영업맨으로 이름을 떨치던 박 회장은 1997년 퇴사해 같은 해 미래에셋자산운용,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차례로 설립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박 회장은 1998년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를 출시해 1년 만에 수익률 약 100%를 달성하며 원금을 두 배로 불리는 성과를 냈다. 국내에 펀드 문화를 정착시킨 주인공이라는 영예도 안았다. 2007년에는 인사이트 펀드를 출시해 두 달 만에 4조7000억원을 끌어 모으기도 했다.
해외 진출의 문도 끊임없이 두드렸다. 2003년 홍콩에 첫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2008년 첫 해외펀드인 시카브펀드를 출시한 후 현재 해외 설정 수탁고를 10조원 이상으로 불렸다. 펀드 해외 수출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박 회장은 이번에 반드시 대우증권을 인수해 국내 1위 증권사이자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하겠다는 각오다.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하게 되면 자기자본은 7조8000억원 수준으로 늘어난다. 초대형 증권사로 발돋움해 글로벌 IB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이후 대우증권의 IB 역량을 활용해 IB, 연금, 자산관리시장을 확대하고 이후 해외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각오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이상으로 미래에셋증권을 국내 1위로 키우고 글로벌 IB로 만들겠다는 게 박 회장의 밑그림이다.
업계에서는 박 회장의 강점으로 특유의 승부사 기질과 무서울 정도로 집요한 집념과 추진력을 꼽는다. 농사를 짓는 부모밑에서 태어나 명문대, 증권사 스타 영업맨을 거쳐 맨손으로 창업 신화를 써낸 박 회장은 또 다른 신화를 준비 중이다.
◆뚝심의 경영자 김남구=업계 중위권에 불과했던 동원증권을 한국투자증권이라는 업계 정상권 회사로 성장시킨 김남구 부회장은 뚝심의 경영자다.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성격 덕분에 김 부회장은 지인 사이에서 별명이 '곰'으로 통한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인수합병(M&A)으로 성장한 금융사다. 그룹 모태인 동원산업이 1968년 한신증권을 인수하며 금융업에 진출했고 한신증권은 이후 동원증권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2005년 예전 한국투자증권을 M&A하며 지금의 모습이 갖춰졌다.
김 부회장의 경영스타일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Why not?(왜 안 되죠?)'이다. 김 부회장은 본인이 참치잡이 배에서 일하면서 몸소 터득한 끈기와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회사를 야전사령관처럼 진두지휘하고 있다.
김재철 동원산업 회장의 장남인 그는 1987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김 부회장은 "경영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참치잡이 배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김 부회장은 망망대해의 원양어선에 올라 칼바람을 맞으며 참치를 잡고 갑판 청소를 하는 등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하루 16시간의 중노동을 했다. 6개월간의 이 같은 뼈저린 경험 이후에도 4년간 평직원으로 근무하며 조직생활을 배웠다.
1991년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기며 금융업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때도 임원이 아닌 평직원으로서 직접 고객들과 부딪혔다.
채권영업, 기획실 등 실전경험을 거친 후 1997년에서야 임원 자리에 올랐고 2000년 부사장, 2004년 사장으로 직함을 바꿨다. 그는 사장이 된 후 가장 먼저 "한국투자증권이나 대한투자증권 중 한 곳을 인수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를 두고 주변에선 젊은 경영인의 호기로운 패기라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보란 듯 2005년 한국투자증권 인수에 성공했다. 인수 당시 한국투자증권은 중소 증권사인 동원증권보다 훨씬 덩치가 컸다. 김 부회장은 인수 성공으로 오너가 자제로서 받게 되는 경영능력에 대한 의혹의 시선들을 깔끔히 씻어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한국투자금융지주는 현재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2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는 금융업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룹의 총자산만 해도 28조8000억원에 달한다.
김 부회장은 회사의 더 큰 미래를 그리고 있다. 2020년까지 자기자본 20조원, 자기자본이익률 20%를 내는 아시아 최고 금융회사로 성장시키겠다는 게 꿈이다.
대우증권 인수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투자금융지주가 대우증권을 인수하면 자기자본 7조5000억원에 달하는 대형 증권사로서 명실상부 국내 1위 증권사로 발돋움할 수 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이정민 기자 ljm1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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