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신라가 통일하기 이전 삼국의 쟁투과정이 치열한데다 연개소문부터 을지문덕, 광개토대왕, 장수왕, 장보고 등 저 멀리 만주에서 동남아 해역까지 중국과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거나 통쾌하게 내쳤던 자존심의 역사가 읽고 보는 후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면에 '고려' 하면 북쪽 오랑캐 몽골제국과 원나라가 먼저 떠오르고, 한 때 그들이 고려를 떡 주무르듯 했다는 생각에 그쪽을 별로 쳐다보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는 거지 싶다. 팔만대장경과 직지심체요절, 최무선의 화약이 빛나는 고려인데도 말이다.
실세권력의 교체시기면 여지없이 등장하는 것이 발빠른 눈치와 배반으로 새로운 권력에 줄을 섬으로써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간신배들이다. 원나라 황실 권력을 업고 고려의 정치, 사회를 주도하는 모리배 권력층이 생겨났으니 이른바 '부원배(附元輩)' 세력이다. 초기에는 원나라를 오가는 환관, 통역관, 무관 등 주로 하위계급들이 부원배였지만 원나라 통치가 길어지자 전통관료집단과 양반 사대부 가문까지 합세한다. 이들이 원 황실에 줄을 대는 주요 수단은 딸을 황실 종친이나 고관대작에게 보내 인척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와중에 원나라 황후의 자리까지 오른 대단한 고려인 여자가 '기황후'이다.
심양의 고려유민에서 개경까지 널리 분포했던 부원배들은 사실상 고려정부의 통치권 밖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놓고 이전투구의 연속인 고려의 내정은 안 봐도 뻔하다. 그런데 <고려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의 저자 이승한은 이들 부원배 세력들이 '세계제국의 시야에서 고려를 보았다'는 순기능의 역사를 함께 캤다. 몽골과의 전쟁 초기 최초로 투항해 고려 공격의 향도를 자임한 홍복원부터 시작된 부원배의 형성, 그리고 '충'자로 이어지는 부마정국의 역사는 개혁군주 공민왕 직전에서 멈춘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