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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고려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

고려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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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이전 국민학교 세대들은 대부분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정순헌철고순'을 칠언절구 한시처럼 다 외운다.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의 왕 순서이다. 그런데 고려의 왕들은 태조 왕건에 더해 망국 시점의 공민왕과 우왕 정도를 알면 꽤 많이 아는 편이다. 그만큼 우리는 조선에 비해 고려의 역사에 어둡다. 고려 없는 조선이 없는데도 말이다. 더구나 나의 경우 이해불가한 것이 고려와 통일신라 이전의 삼국시대 역사를 고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신라가 통일하기 이전 삼국의 쟁투과정이 치열한데다 연개소문부터 을지문덕, 광개토대왕, 장수왕, 장보고 등 저 멀리 만주에서 동남아 해역까지 중국과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거나 통쾌하게 내쳤던 자존심의 역사가 읽고 보는 후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면에 '고려' 하면 북쪽 오랑캐 몽골제국과 원나라가 먼저 떠오르고, 한 때 그들이 고려를 떡 주무르듯 했다는 생각에 그쪽을 별로 쳐다보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는 거지 싶다. 팔만대장경과 직지심체요절, 최무선의 화약이 빛나는 고려인데도 말이다.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은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국호를 '대원'으로 바꾸고 베이징으로 천도하면서 중원 지배에 들어섰다. 몽골제국의 침입에 강화도를 근거지로 30년 넘게 저항하던 최씨 무신정권이 무너지면서 고려의 고종은 쿠빌라이에게 태자를 보내 항복하고 1270년 개경으로 환도했다. 고종을 이은 원종은 왕위에 오르자 마자 베이징에 가서 원나라 황제에게 인사부터 드렸고 그 자리에서 태자와 쿠빌라이의 딸 제국대장공주의 결혼을 성사시킨다. 그 태자가 충렬왕이 되면서 부마국인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통치, 이른바 '부마정치'가 본격화된다. 충렬왕을 뒤이은 충선왕 이지리부카는 최초의 한몽 혼혈왕으로 원나라 황실이 외가이자 처가였기에 고려는 원나라 황실의 변방 속지의 처지로 전락했다. 고려의 왕이 하루 아침에 저 멀리 티벳으로 홀홀단신 유배를 가거나 베이징에 장기간 머무르면서 고려를 원격통치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실세권력의 교체시기면 여지없이 등장하는 것이 발빠른 눈치와 배반으로 새로운 권력에 줄을 섬으로써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간신배들이다. 원나라 황실 권력을 업고 고려의 정치, 사회를 주도하는 모리배 권력층이 생겨났으니 이른바 '부원배(附元輩)' 세력이다. 초기에는 원나라를 오가는 환관, 통역관, 무관 등 주로 하위계급들이 부원배였지만 원나라 통치가 길어지자 전통관료집단과 양반 사대부 가문까지 합세한다. 이들이 원 황실에 줄을 대는 주요 수단은 딸을 황실 종친이나 고관대작에게 보내 인척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와중에 원나라 황후의 자리까지 오른 대단한 고려인 여자가 '기황후'이다.

 심양의 고려유민에서 개경까지 널리 분포했던 부원배들은 사실상 고려정부의 통치권 밖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놓고 이전투구의 연속인 고려의 내정은 안 봐도 뻔하다. 그런데 <고려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의 저자 이승한은 이들 부원배 세력들이 '세계제국의 시야에서 고려를 보았다'는 순기능의 역사를 함께 캤다. 몽골과의 전쟁 초기 최초로 투항해 고려 공격의 향도를 자임한 홍복원부터 시작된 부원배의 형성, 그리고 '충'자로 이어지는 부마정국의 역사는 개혁군주 공민왕 직전에서 멈춘다.
<이승한 지음/푸른역사/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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