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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너무 좋다'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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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문 칼럼을 보니 '너무'라는 말이 다른 강조어 부사들을 모두 먹어치울 거란 우려를 내놓는다. 참, 매우, 몹시, 아주, 정말로, 대단히, 상당히, 꽤. 이런 말들 말이다. 일리가 있다. 이들 낱말보다 '너무'가 강한 까닭은 그것이 원래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는 '넘다'에서 나왔으며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넘어선 상태로'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강조를 오버하다 보니 거기까지 가버렸다. '너무'는 '지나치게'란 말과 원래 통했다. '지나치게'는 심정적 기준이나 잣대를 넘어가 있기 때문에 걱정이나 비판이나 부정적 의견을 담게 되어 있다. 하지만 '매우'와 같은 의미로 쓰이면서 '너무'의 폭은 넓어졌다. '매우'나 '몹시'와 가까운 뜻에 '너무나'라는 말이 있었다. 이 '너무나'의 의미를 지닌 '너무'가 많이 쓰이면서 유행어처럼 돼버렸다.

세상에 떠도는 말의 기원이 어떻게 되는지 따지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고 오분석이 잦은 것도 없을 것이다. 나는 '너무나'가 사랑의 절절한 강도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 대중적 사건을 '동숙의 노래'에서 찾는다. 문주란이 서늘한 허스키 음색으로 부른 이 노래는 "너무나도 그 니이이임을 사아랑해앴기이이에"로 시작한다. 이 구절이 이 땅의 사람들의 혀끝에 녹고 녹아, '너무나 사랑하는' 일의 가슴 아픔을 아로새겼다.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너무나 사랑해버린 것이 화근이 되는, 이 사랑의 (强度) 표현이 사랑을 앓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공명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너무나도 사랑했기에'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대중신화를 만들어냈다.

이 '너무나도 사랑'은 심수봉에 오면서 '너무 좋다'의 단도직입적인 표현으로 바뀐다. '사랑 밖엔 난 몰라' 속에 나오는 가사 얘기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길이 너무 좋아' 이 표현에서 사람들은 그만 반해버렸다. 논리도 필요 없고 이유도 필요 없다. 그냥 그 눈길이 사무치도록 좋은 것이다. 이 좋음이 지나치다고 말해도 좋다. 좋은 걸 어떻게 하나? 이 대책없는 기분이 '너무'라는 말에 착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는 나중에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너무 좋아". 이 말은 사랑의 화살을 냅다 꽂는 확인사살 같은 것이었다. 이 말 때문에 '너무 좋다'는 이것 저것 가릴 것도 없고, 내가 그것을 제어할 힘도 없고, 그냥 몸으로 부비고 마음으로 어루만지고 싶은 그 좋음으로 내달려갔다. 요컨대 '너무 좋다'가 국어사전에 등재된 힘은, 저 심수봉의 사랑에 대한 무한한 항복(降服)의 기분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의가 있으면 말씀해 보시라.





빈섬 이상국(시인ㆍ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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