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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별신굿 세습 巫家 '신들린 2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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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 김영희·악사 김용택 연륜의 무대
양자·양녀 이수자들과 공연
풍어제·오구굿 화려한 볼거리 가득


지난 13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 올려진 동해안별신굿 공연 모습 ⓒ나승열

지난 13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 올려진 동해안별신굿 공연 모습 ⓒ나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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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동해안별신굿 명예보유자

김영희 동해안별신굿 명예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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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열다섯에 여동생 업고 부모 따라 굿판을 따라 다녔었죠. 열일곱엔 쾌자(무복의 일종) 입고, 부산굿, 경북굿을 시가집으로 배우고 스물다섯엔 심청굿, 오구굿 등 스물네 가지 무가(巫歌)를 모두 할 수 있었어요. 살아오면서 참 하대도 많이 받았죠. 어려운 시절 칠남매 낳아 하나 잃고 아들, 딸들에겐 먹고 살 걱정에 더 이상 굿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어요. 지금은 허리뼈가 앉고 등이 굽어져 활동을 많이 못해요. 나이 먹으니 목도 변하고 이래 삽니다."

굿을 업으로 삼고 평생을 살아온 무녀 김영희(여ㆍ75)씨. 그는 동해안별신굿 명예보유자로, 4대째 무업을 계승하고 있는 세습무 김씨 가계의 최고령자다. 그런 그가 허심탄회하게 지난 세월을 이야기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동해안 지역에서 유명했던 화랭이 고(故) 김석출씨다. 화랭이는 동해안별신굿에서 장구와 징, 꽹과리 등을 다루는 악사다. 3대 세습무였던 김석출씨와 그의 부인인 무녀 김유선씨가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가호' 동해안별신굿 보유자로 지정됐다. 동해안 세습무는 김석출의 조부 김천득으로부터 시작돼 그 다음 김범수ㆍ김성수ㆍ김영수 삼형제가 무업에 종사했고, 김성수씨와 그의 아내 이선옥 사이에서 태어난 김호출ㆍ김석출ㆍ김재출 삼형제로 전해 내려왔다. 그 다음 대(代)로 이 삼형제의 자녀들인 김영희씨와 그의 친자매 김동연(64)ㆍ동언씨(61) 그리고 김용택(김호출의 자ㆍ70)ㆍ김정희(김재출의 자ㆍ55)씨 등이 무녀와 악사가 돼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김씨 집안으로 시집, 장가 온 이들도 함께 무업에 종사하고 있다.
동해안별신굿이 문화재가 된 지 30주년을 맞았다. 이들의 굿판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실내 공연 무대에 벌어졌다. 400석이 넘는 관객석은 빈 곳이 없었다. 장장 3시간 반이나 진행된 별신굿에 관람객들의 집중도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대에는 젊은이들의 얼굴도 등장했다. 바로 김씨 세습 무가(巫家)가 동해안별신굿을 잇기 위해 양자ㆍ양녀로 들인 이수자ㆍ전수생들이었다. 우리 굿과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다.

별신굿 무대를 구성한 풍어제와 오구굿은 화려한 장엄(莊嚴), 구수하면서도 때론 애닯고 때론 힘찬 소리와 춤, 흥겨운 악기 연주로 가득했다. 풍어제가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뱃사람들의 불상사를 막기 위한 의례이자 화합과 소통을 북돋는 마을 굿이라면, 오구굿은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개인적인 굿이다.

공연 하루 전날 한창 리허설 중인 동해안별신굿 보존회 사람들을 만났다. 무대 뒤 의상실에서 대면한 이들은 한바탕 굿을 하고 온지라 이마에 송골송골 땀에 맺혀 있었다. 예능보유자로 지정돼 있는 김용택씨는 굿의 중심역할을 맡고 있는 화랭이다. 그는 "실내 공연이라해도 거의 야외 무대와 다름없이 굿을 하고 있다"며 "언젠진 모르지만 별신굿은 오랜 세월동안 전해 내려왔다. 그런데 점차 이를 잇는 사람들이 줄었고, 이제 우리 아래로는 무업에 종사하는 이가 없다. 그래서 양자, 양녀를 들였다"고 했다.

화랭이 김정희씨와 김용택씨(왼쪽부터) ⓒ나승열

화랭이 김정희씨와 김용택씨(왼쪽부터) ⓒ나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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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날인 12일 리허설 도중 만났던 동해안별신굿 보존회 사람들. 김용택-김영숙 부부(왼쪽부터 세, 네번째), 김동렬-김동언 부부(첫, 둘째), 무녀 김동연(다섯번째), 김영희(여섯번째), 악사 김정희씨(오른쪽 끝).

공연 전날인 12일 리허설 도중 만났던 동해안별신굿 보존회 사람들. 김용택-김영숙 부부(왼쪽부터 세, 네번째), 김동렬-김동언 부부(첫, 둘째), 무녀 김동연(다섯번째), 김영희(여섯번째), 악사 김정희씨(오른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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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김영숙(70)씨는 시집와서 무녀가 된 인물이다. 그는 "고향이 강릉 남항진이었다. 동네에서 풍어제가 엄청 많이 열렸다. 신이 내리니까 어디서 굿한다면 밥도 안 먹고 책가방도 던져놓고 굿판을 찾아다녔다"며 "그러다 열다섯에 별신굿 세습무가로 시집을 왔다. 내가 좋아 고생 모르고 굿을 했다. 그런데 부모가 무당이라 자식들이 밖에서 놀림당하고 천대받으며 울고 온 날이 많았다"고 했다. 아내가 한 말에 남편은 "집사람 얘기하듯이 천성처럼 타고 나야한다. 무당 소리도 팔자고 팔자 없으면 절대 못 배운다"고 했다.

반대로 무녀와 결혼해 화랭이가 된 이도 있다. 바로 무녀 김동언씨의 남편 김동렬(63)씨다. 이들 부부는 부산시 문화재 '부산 오구굿'의 보유자들이기도 하다. 개인이 청해서 열리는 오구굿은 현대로 들어가 손님이 없어 연행되지 못했다. 이렇게 맥이 끊길 뻔도 했다가 지난 2011년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2013년부터 다시 굿이 열리고 있다.

굿은 화랭이든 무녀든 적어도 20~30년 기간 동안 익혀야 제대로 무대 위에서 솜씨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연주, 노래와 함께 춤도 함께 곁들여진다. 무가(巫家)의 막내인 악사 김정희씨는 "연희자들 모두 1인 2역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김동연씨는 "굿은 지역별로 서해안, 남해안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동해안은 음악이 참 좋다고들 한다. 가락이 어려워 주로 우리 소리를 좀 배운 이들이 굿을 보러 즐겨 찾아오지만,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것을 알리고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동해안별신굿 중 마을제인 풍어제는 부산 다대포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동해안 50여개 어촌 마을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모두 이들의 몫이다. 야외 굿 외에도 근래 들어서는 굿의 무대화 공연도 늘고 있다. 보존회의 맏형인 김용택씨는 "부산 기장에 연습공간이 있긴 하다. 그래도 전수회관을 제대로 지어서 교육도 하고, 굿을 알려가는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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