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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 교수의 패션메신저] 상투자르기와 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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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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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 교수의 패션 메신저] 속절없이 1년의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자식을 빼앗긴 원과 한을 가눌 길 없었던 엄마 아빠들은 팽목항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삭발을 했다. "부모가 준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려서, 그래서 부모에게 불효가 되더라도..." 라고도 했고, "죽을 각오를 나타내는 삭발이다. 나는 이미 죽었다"라고도 했다.

진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억의 숲'을 만들기 위해 한국에 온 오드리 헵번의 아들 션 헵번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런 '궁금증'을 내놓았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왜 배 안에 계속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나요", "왜 그런 '명령'을 지켜야 했나요", "왜 아이들이 첫 번째로 구조되지 못 했나요" 등등. 그렇다. 아이들 엄마 아빠들은 그 해답을 알려달라고 울며 삭발을 했을 것이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 있다. 몸과 터럭과 살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란 말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귀한 몸이니 소중히 아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찍이 조상들은 머리털을 깎는데 대해 극도로 저항했다.

120년 전인 1895년, 일본이 침략의 마수를 뻗으며 머리를 깎도록 밀어붙인다. 미풍양속을 허물어내려 함이었다. 고종이 민비 상중임을 이유로 단발을 미루자, 왜군들이 궁을 둘러싸고 대포를 들이대며 위협했다. 왕이 장탄식을 하며 상투를 잘랐다. 뒤이어 태자도 자르게 하고 단발령을 내리니 곡성이 땅을 흔들고 분노가 하늘에 치솟았다고 했다. 궁 밖에서도 일본군들이 칼을 들고 길을 막을 뿐 아니라 민가에 들어가 샅샅이 검문까지 하였기 때문에, 깊이 숨지 않으면 상투 자르기를 면하기 어려웠다.

서울에 온 시골사람들은 급히 귀향을 서둘렀고 길에서 붙들리면 그 자리에서 상투를 잘렸다. 차고 다니던 주머니에 잘린 상투를 담아 넣고는 통곡을 하면서 고향으로 내려갔다. 당시의 정서로는 목이 잘리더라도 머리는 내놓을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명성 황후 시해와 단발령이 이어지면서 이에 반발해 항일 의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단발령을 주도했던 김홍집 내각은 그 여파로 무너졌고 김홍집은 피살당하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정권이 붕괴된 것이다. 단발령은 그렇게 실패했다.
하지만 머리를 깎아야 하는 흐름은 점차 도도해진다. 그럼에도 상투를 자르면 문중에서 쫓겨나는가 하면, 야밤에 지방으로 도피하거나 산골로 들어가 화전을 개척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상투를 자르지 않아 선교사들이 주도하는 신식교육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머리카락 때문에 많은 인생이 바뀌었다. 물론 옛날의 상투자르기와 오늘의 삭발은 다르다. 전자가 강제로 당하는 일인데 반해 후자는 울면서 스스로 결행하는 일이다.

현대인들은 머리카락에 손을 대는 것이 패션을 완성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인 것처럼 알고 산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삭발'을 통해 오늘날에도 머리카락에는 많은 사람들을 울리는 힘이 있음을 새삼 본다. '궁금증'을 풀어달라는 절규를 '삭발'로 보여야하는 이런 아픔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고 바란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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