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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엠파이어 스테이트와 롯데월드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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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1920년대 미국에서 한창 건설붐이 일어나고 있을 무렵, 뉴욕에서는 월터 크라이슬러와 존 제이콥 래스콥이라는 두 갑부가 누가 더 높은 빌딩을 세우느냐를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크라이슬러가 1930년에 당시 세계 최고층 빌딩인 77층자리 크라이슬러빌딩을 완공하자, 래스콥은 건설회사를 종용해 불과 410일만에 102층짜리 건물을 준공, '세계 최고 타이틀'을 빼앗아갔다.

이 빌딩이 이후 40년간 최고층 기록을 보유했으며, 지금까지도 세계인들의 머리속에 고층건물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다. 후세의 호사가들이 이야기를 보탠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미국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마천루'의 탄생은 이렇게 한 인간이 우월감을 드러내려는 수단으로 만들어졌다.
고대로부터 높다랗게 지어 올리는 건물들은 대체로 인간의 과시욕에서 시작됐다. 탑이라는 건축물 자체가 초월적 존재인 신이 살고 있는 하늘에 조금 더 가까이 닿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은 그만큼 자신과 신의 거리를 좁혀주고 그로써 신의 권능을 조금이나 얻어 보려는 욕망의 표출인 셈이다.

현대시대의 마천루들도 비슷한 이유로 지어진다. 기업들은 고층빌딩이 가지는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최고층'이라는 높이와 '랜드마크'라는 상징성에 현혹된다. 포장만 바뀌었을 뿐 수천년전 이집트 사막에 피라미드를 지어 올리던 파라오의 허영과 똑같다.

수많은 논란 끝에 서울 잠실에 지어지고 있는 롯데월드타워가 드디어 100층을 넘어섰다. 층수를 기준으로 세계 10위, 완공되고 나면 세계 4위라는 등 벌써부터 '타이틀' 이야기가 한창이다.
롯데월드타워는 일종의 '신전'처럼 보인다. 유통 재벌 롯데에게 있어서 이 건물은 '자본과 소비의 신'에게 바쳐지는 상징물인 셈이다. 그런데 이 멋들어진 건물은 현재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원인 불명의 진동과 누수 현상 등으로 영화관과 아쿠아리움이 서울시로부터 영업정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신들의 세계를 떠나 인간계를 들여다보자. 100층을 돌파했다는 영광의 아래에는 생계의 문턱에서 문지방에 발이 걸린 인간들의 고통이 있다. 불안감에 떠는 시민들은 이 거대한 쇼핑센터에 발길을 끊었다. 서울시에서는 아직까지 정식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어 입점 상인들은 당장에 생계가 위협받게 됐다. 마천루가 하늘에 가까이 가는 동안 상인들의 눈에서는 분루(憤淚)가 떨어졌다.

어쩌면 밀집화된 대도시에 초고층 빌딩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교통과 인구집중에 따른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고, 너무 비싼 건축비용 때문에 누군가 무리수를 두게 될 수도 있다.

이미 100층까지 올라간 건물을 되돌릴 수는 없다. 안전 문제로 담을 쌓고 있는 서울시는 갑갑한 공무원식 논법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고사돼 가고 있는 상인들의 타는 심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롯데월드타워를 지어올린 롯데그룹도 하루라도 빨리 주변 시민들과 정부, 더 크게 이 나라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엠파이어 스테이트는 완성된 직후 아무도 입주하려고 하지 않아 한때 '엠프티(empty)스테이트' 라는 조롱을 받았지만, 지금은 뉴욕의 상징이 됐다. 롯데월드타워도 언젠가 지금의 '흑역사'를 뒤로 한채 훗날 서울을 대표하는 진정한 랜드마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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