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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북미 대륙을 개척한 두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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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지난해 7월 18일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박찬호의 은퇴식이 열렸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은퇴식에 참석한 박찬호가 경기 시작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사진=김현민 기자]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지난해 7월 18일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박찬호의 은퇴식이 열렸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은퇴식에 참석한 박찬호가 경기 시작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사진=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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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1960년대 중반 어느 날 부산 서면 로터리에 있는 북성극장에서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황야의 무법자'는 매우 인상적인 서부활극이었다. 이제는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지만. 뒷날 알게 되는 일이지만 '황야의 무법자'는 버트 랭커스트와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OK 목장의 결투' 등과 같은 할리우드에서 만든 정통 서부활극이 아니고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이른바 '마카로니 웨스턴'이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짝퉁 서부활극이다. 어쨌거나 한때 세계 영화 시장을 이끌었던 서부활극은 내용이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의 프런티어(frontier) 정신을 그리고 있다.

프런티어는 개척지와 미개척지의 경계선을 이르는 말이다. 프런티어는 17세기 북미 지역에서 식민이 시작된 뒤 끊임없이 서쪽으로 이동했으며 태평양 연안에 이르게 돼 더 이상 경계선이 있을 수 없게 된 1890년 무렵 없어졌다. 개척자 정신으로 대변되는 이 말은 1960년대 초 미국의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뉴프런티어를 주창하면서 새롭게 부각되기도 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개척자 정신의 상징인 프런티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사회복지의 충실, 인종차별의 폐지, 고도 경제성장의 실현을 뉴프런티어의 목표로 제시했다.
1862년 제정된 홈스테드법은 서부 지역에서 5년 동안 개척 활동을 한 21세 이상 시민에게 160에이커(약 20만평)의 땅을 무상으로 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법은 19세기 중반 뒤 서부 개척을 더욱 촉진했다. 프런티어 정신에 바탕을 둔 서부 개척은 인디언 주거지를 침탈하는 일로 비난 받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탄생을 도운 역사적인 일이기도 하다. 스포츠 쪽에서 보면 땅 빼앗기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미식축구로 프런티어를 설명할 수 있겠다. 파이어니어(pioneer)는 프런티어의 연관 검색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쓰기 때문이다. 'The pioneers who settled in the american west in the 19th century' 같은 문장에서 알 수 있다. 19세기 미국 서부 지역에 정착한 이들이 바로 파이어니어, 즉 개척자다.

글쓴이가 프런티어와 파이어니어 같은 외래어를 떠올리게 된 까닭은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인 박찬호가 한때 팀 동료였던 노모 히데오와 함께 메이저리그 사무국 선정 '야구 개척자(Pioneers of Baseball)상' 수상자가 됐기 때문이다. 박찬호와 노모는 오는 18일 뉴욕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퇴임하는 버드 셀리그 커미셔너로부터 이 상을 받는다. 미국 쪽 시각에서 보면 야구도 계속 서진(西進)한 결과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 지역인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이르게 됐으니 메이저리그에서 두 은퇴 선수에게 '파이어니어 상'을 줄 만하다.

그런데 둘은 서부활극에 나오는 단역 수준의 그러 그런 개척자가 아니었다. 100승대 투수로서 세계 야구의 최고봉인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다. 노모는 두 차례나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노모 뒤 이시이 가즈히사,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가와 게이, 다르빗슈 유, 다나카 마사히로 등 일본 리그에서 내노라 하던 투수들이 태평양을 건넜지만 2014년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선수는 없다. 박찬호와 노모가 함께 뛰었던 1990년대 중·후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둘을 축으로 이스마엘 발데스(멕시코)-라몬 마르티네스(도미니카공화국)-대런 드라이포트(미국)로 이어지는 다국적 선발 로테이션을 운용했다. 이전 시기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세기 중반인 1869년 북미 지역에서 프로야구가 시작된 뒤 12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선수 이전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아시아계 선수는 달랑 한 명이었다. 두 선수가 개척자로서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박찬호는 한국인 1호 파이어니어인데 노모 히데오는 사실 1호가 아니다. 1964년, 난카이 호크스(오늘날 소프트뱅크 호크스, 연고지도 오사카에서 후쿠오카로 이동)는 유망주 세 명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보냈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인 무라카미 마사노리는 샌프란시스코 산하 싱글A 구단 프레즈노 자이언츠가 속한 캘리포니아 리그에서 '올해의 신인'으로 뽑혔다. 경기력을 인정한 자이언츠 구단은 그해 9월 1일 무라카미를 메이저리그로 올렸다. 무라카미는 1965시즌까지 5승1패 평균자책점 3.43과 100탈삼진의 기록을 남겼다. 반세기 전에 일본인 1호 메이저리거로서 수준급 성적을 올린 것이다.

박찬호와 노모는 공통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각각 서울(한양대학교)과 오사카(긴테스 버팔로스, 오늘날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출발해 이동 경로는 달랐지만 계속 동진(東進)해 대서양 연안인 뉴욕에 이르게 된다. 박찬호는 2007년 메츠에 이어 2010년 양키스에서 뛰었다. 노모는 1998년 메츠 유니폼을 입었다. 아시아 쪽 시각으로 보면 둘은 동쪽으로 이동하며 북미 대륙을 개척한 선구자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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