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였다. 카운터에서 처방전을 준비하던 간호사가 입을 열었다. 꼬마야, 눈물이 짜지 않고 달면 넌 그거 먹으려고 하루 종일 울겠지. 그래서 하느님이 조금만 먹으라고 짜게 만드신 거야. 아아, 그 얘기를 듣는 순간 A는 당장이라도 간호사에게 달려가 꼬옥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말을 시(詩)처럼 하는 그녀에게 남은 평생 이빨을 몽땅 맡기고 싶어졌던 것이다.
B의 속사포에 숨소리도 내지 않던 주방장이 마침내 근엄하게 말문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개업 1주년을 맞아 깜짝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흰색 바둑돌을 찾은 분에게는 탕수육 한 그릇을 무료로 드립니다. 아아, 이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흰돌이 탕수육이면 검은돌은 팔보채라도 된단 말인가. 예상치 못한 답변에 B는 겨우 씩씩거리다가 차마 거절하지 못한 탕수육을 맛나게 먹었다.
인터넷에서 접한 A와 B의 이야기는 말이 말로써 갖는 의미를 고민케 한다. 독설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기업 하나를 휘청거리게 하는 사태를 목도하면서 과연 사람을 살리는 말은 무엇인지, 조직을 키우는 말은 어떤 것인지 심사숙고하게 되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도 말이요, 천당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행도 사람의 입에서 비롯된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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