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가는 길을 계집이 치돌듯이
제 사내 제 계집 아니거든 이름 묻지 말구려
정철의 <훈민가> 중에서
'간나이'는 북한 말에 남아있듯이 여자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도는 것은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멀리 돌아가는 것이고 치도는 것은 아래에서 위로 가는 길을 빙 두르는 것이다. 여자는 아래이니 위에 있는 남자를 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이때의 간나이나 사나이에는 하인이나 노복, 기생은 제외다.
얼굴도 보지 말고, 이름도 묻지 말아야, 상열(相悅)의 광란상태로 가지 않는다는 저 정철규정집에 의거하자면, 요즘의 거리들은 성을 불지르는데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으며, 각종 술집이나 TV나 영화, 게임 속은 벌써 스스로 슬쩍 미친 채 도발을 유인하는 쪽에 가깝다. 게다가 소개팅이나 회식이니 혹은 엠티니 하는 것들은, 정철이 보면 환장하기 딱 좋을 시추에이션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따위의 '소셜'은 어떤가. 날마다 제 얼굴을 갈아끼우고 밤낮으로 이름을 묻고 팔며 마음을 유통시키는 장소가 아니던가. 저 훈민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천하의 사음(邪淫)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리저리 얽혀들지 않고 무탈하게 지내는 수많이 이들은 얼마나 대단한 '둔감력'을 지닌 분들인가. 욕망의 환경에 너무 단련이 되어, 정철시절의 촉수를 뭉뚱하게 만들어놨음일까.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