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에 북한 직접 명시·FTA 서명시기 놓고 막판 신경전
국정 정상화 속도 내는 朴대통령, 국정 지지율 반전 기회도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한중 양국은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몇 시간 앞둔 3일 오전까지도 북핵에 대한 입장표명 수위 및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명 시기 등 민감한 문제를 놓고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외교적 파장을 고려해 일본 우경화에 대한 경고 메시지는 어떤 방식으로 표출할 것이냐를 두고도 고민이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北에 대한 경고…제스처로 끝날까= 시 주석은 이날 오후 서울 도착과 함께 윤병세 외교부장관 내외의 영접을 받는다. 주석 취임 후 첫 한국 방문은 '평양을 먼저 방문한다'는 내부 관례를 깬 이례적 행보다. 중국 측은 "이번 한국 방문이 제3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시 주석의 행보 자체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경고성 제스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 측의 이런 입장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중국에 대한 외교·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러시아, 일본으로 협력범위를 넓히는 김 위원장에 대한 시 주석의 불만은 상당하지만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는 것도 중국이 원하는 바는 아니다. 한반도에 군사적 충돌이 생길 경우 미국의 영향력 강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데 일치된 의견을 표현하고, 중국 측은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천명하는 식의 기존 방식에서 논의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아 보이지만, 이 문제를 두고 양측은 막판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지난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핵안보정상회의 참석 중 만난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FTA 협상과 관련해 같은 말이면서도 다른 뜻을 상대에게 전달했다. 박 대통령은 "연내 타결하자"며 구체적 제안을 냈지만 시 주석은 "협상의 속도를 내자"는 취지로 답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연내 체결에 합의'와 같은 문구가 공동성명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여전히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양국이 큰 틀에서 FTA 체결에 대한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문구가 공동성명에 포함되더라도 협상속도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日에 대한 경고메시지는=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의 방한에 앞서 중국 중앙TV(CCTV)와 인터뷰를 갖고 "(최근 일본의 행보는) 국가 간에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고 국제사회의 준엄한 목소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나 과거사 왜곡 등 우경화 움직임에 한중이 공동 대응하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양 정상이 공개된 방식으로 메시지를 밝히는 데에는 부담이 크다.
이런 행보는 자칫 동북아 안보지형에서 '한중 대 미·일'의 구도가 형성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며,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며 실리를 추구한다는 박 대통령의 '균형외교론'과도 배치된다. 이에 한중 정상은 일본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동북아 평화안정에 기여할 책임이 있다는 수준의 포괄적 메시지를 밝힐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내 정치에 미칠 영향은= 정상회담 후 양국 정부는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설, 영사협정, 대기오염 방지 공동연구 양해각서(MOU) 등 총 12건의 협정문에 서명한다. 4일에는 양국 기업 간 계약체결건도 다수 예정돼 있다.
풍성한 경제성과는 박 대통령에 대한 국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이끄는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후 국정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박 대통령 입장에선 이번 외교 이벤트가 지지율 하락세를 반전시킬 절호의 카드인 셈이다. 지난 1일 세월호 이후 첫 민생현장 방문에 나선 박 대통령은 앞으로 국민들과의 스킨십을 확대하고 다양한 경제 관련 행사를 주관하면서 국정을 정상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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