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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가난한 코트디부아르, 축구는 왜 잘할까

최종수정 2014.06.19 09:13 기사입력 2014.06.1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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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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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1980년대 들어 주요 수출품 코코아와 커피의 국제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과도한 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 여파로 1999년 대외채무 132억 달러(약 13조4442억 원)도 짊어졌다. 그해 일어난 군부의 쿠테타로 서구 국가들의 원조도 중단됐다. 지난해 국내 총생산(GDP)은 세계 97위(282억 달러ㆍ약 28조7217억 원). 개인소득은 158위로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오른 32개국 가운데 가장 적다.
그러나 국가 경제력과 축구 실력은 별개다. 코트디부아르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23위. 디디에 드로그바(36ㆍ갈라타사라이), 야야 투레(31ㆍ맨체스터시티) 등 일류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이번 월드컵 16강 진출 가능성도 크다. 지난 15일(한국시간) 헤시피의 아레나 페르남부쿠에서 열린 C조리그 첫 경기에서 일본에 2-1로 역전승했다. 일본의 간판 공격수 혼다 게이스케(28ㆍAC 밀란)는 패인을 묻자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이 드러났다"고 했다. 코트디부아르 축구가 존경받는 위치에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전 프랑스 풋볼 기자 파스칼 페레(46)는 12일 일본 스포츠나비에 칼럼을 실었다. 답은 코트디부아르의 최대도시 아비장에 있다.

▶코트디부아르 축구의 아버지, 기루
아비장 북동쪽에는 코트디부아르 최고의 축구클럽 ASEC 미모사가 있다. 코트디부아르 프리미어리그 23회 우승에 빛나는 명문이다. 클럽의 맞은 편 잔디구장에서는 유소년들이 공을 주고받으며 패스를 연습한다. JMG 축구 아카데미다. 2만㎡ 평지에 잔디경기장 두 개, 맨흙 경기장 한 개, 미니 경기장 세 개, 체육관, 기숙사, 교실 등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세미나 등을 개최할 수 있는 호텔도 있다. 호화로운 시설은 인근 어촌 주민들의 가난한 삶과 대조를 이룬다.

이 학교의 설립자는 프랑스의 축구 트레이너 장 마르크 기루(69)다. 1966년부터 1984년까지 니스, FC 뮐루즈, AS 칸 등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프랑스대표팀에서 열아홉 경기를 뛰어 세 골을 넣었다. 코트디부아르와의 인연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ASEC 미모사에서 코치와 기술이사를 맡았다. 기루는 유소년선수 양성을 위해 1994년 클럽 옆에 축구학교를 세웠다. 이 곳에서 지난 20년간 배출한 선수는 약 350명. 그 중 여섯 명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맹활약한다. 콜로 투레(33ㆍ리버풀), 야야 투레(31ㆍ맨체스터시티), 디디에 조코라(34ㆍ트라브존스포르), 부바카루 베리(35ㆍ로케런), 제르비뉴(27ㆍAS 로마), 살로몬 칼루(29ㆍ릴 메트로폴) 등이다.
▶조코라, "기루는 인생 자체를 바꿔 줬다."
열두 살에 입학한 조코라는 기루에 대해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는 "인생 전체를 바꿔 줬다. 기루가 없었다면 코트이부아르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열일곱 살에 입학한 야야 투레도 "하층민이었던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줬다"고 했다. 이들은 축구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6시부터 체력 훈련을 했다. 이어진 기술 연습에는 코치 다섯 명이 달라붙었다. 교사 열 명에게 하루 네 시간 동안 기본 상식과 영어도 배웠다. 아카데미는 음식, 유니폼, 운동화, 속옷 등 축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다. 실력이 뛰어난 학생에게는 장학금도 제공했다.

조코라는 "들어 간지 1년 만에 포상으로 받은 축구화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매일 제공된 우유도 특별했다. 그 덕에 키가 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우유를 즐겨먹지 않은 바카리 코네(33ㆍ카타르 SCㆍ167cm)만 키가 작다"며 웃었다. 기루는 혹독한 훈련으로 다듬어진 선수들을 ASEC 미모사 등에서 뛰게 한 뒤 유럽무대에 진출시켰다. 조코라는 2000년 이적료 70만 유로(약 9억6876만 원)에 벨기에 겡크에 입단했다. 그는 "아카데미를 거쳐 유럽리그에서 처음 진출한 선수였기에 무조건 성공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적료는 아카데미의 운영과 확장에 쓰였다. JMG 축구 아카데미는 마다가스카르(2000년), 태국(2005년), 말리(2006년), 알제리(2007년), 이집트(2007년), 베트남(2007년), 가나(2008년)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무한 경쟁에서 비롯된 조직력
JMG 축구 아카데미의 훈련 철학은 '최고의 선수'다. 그만큼 선발 기준은 까다롭다. 짧은 5대 5 경기에서 기량을 모두 발휘해야 한다. 높은 경쟁률 때문에 합격자는 아비장의 지역신문에까지 소개된다. 경쟁은 입학 뒤에도 계속된다. 일반적인 테스트에 맨발로 테니스공을 다루는 등의 독특한 시험이 더해진다. 제르비뉴는 "단순한 놀이로 보일 수 있는데 공을 가졌을 때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터득하게 해준다"며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했다"고 했다. 야야 투레는 "남들보다 늘 한 시간 일찍 일어나 훈련을 시작했다. 그런 나를 미치광이로 여기던 친형 콜로 투레도 얼마 못가 똑같이 했다"고 했다. 그는 "주말에도 집에 가지 않았다. 6개월에 한 번 들를 뿐이었다"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고 했다.

페레는 "선수들이 혹독한 과정을 함께 하면서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며 "이것이 코트디부아르 특유 조직력의 근원"이라고 했다. 그 힘은 앞으로 더 세질 것이다. 기숙사 정문에 투레 형제, 제르비뉴 등 자랑스러운 졸업생들의 이름이 크게 새겨 있다. 선수들은 성공의 문턱을 넘나들며 오늘도 구슬땀을 흘린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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