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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있는 판소리, 고전의 감동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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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5번째 열리는 판소리 고전 해설 행사 '득음지설'

올해로 5번째 열리는 판소리 고전 해설 행사 '득음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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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다섯마당의 명창과 고전문학 대가들의 예리한 해설…23일부터 삼성동 민속극장 풍류서 공연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교명오작(橋名烏鵲) 선인교(仙人橋)요
 루호광한(樓號廣寒) 옥경루(玉京樓)라
 차문전생(借問前生) 수직녀(誰織女)요
 지응금일(知應今日) 아견우(我牽牛)라

판소리 춘향가에서 이몽룡이 광한루를 보며 지은 일곱자 넉줄의 싯구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고전 소설 춘향전의 대가 김현룡 건국대 명예교수의 풀이는 대략 이렇다. "이 다리의 이름은 오작교요, 신선이 건너다닌다. 누각의 이름은 광한이며,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직무를 보는 곳이다. 잠깐 물어보겠는데 전생의 직녀는 어디에 있느냐. 응당 오늘 내가 견우임을 아노라"
김 교수는 입으로 전해져 무려 150종의 각기 다른 판소리 춘향가가 전해지지만, 이 춘향가의 광한루 대목은 작가가 넉 줄 시구만으로 엄청난 걸 써놓고 그냥 지나가버렸다고 했다. 해설 덕에 이도령이 이미 광한루에서 자신의 연인을 만날 것을 기대했던 것임을 이해할 수가 있다. 조선시대 서당을 다녔던 중인 이상의 사람들은 이 대목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또렷한 영상이 떠올랐고 득음 소리와 함께 감동이 밀려왔을 것이다. 김 교수는 "한글로 쓰인 구전소설 중에 춘향전만큼 중국의 고사성어와 싯구가 많이 들어가 있는 건 없다. 서사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 소리만 듣는 것과는 느껴지는 감성 자체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에게서 판소리 문학을 배웠던 김홍신 건국대 석좌교수가 부연하듯 "이몽룡이 지적이고 의리있는 남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면밀히 보면 아주 나쁜 남자다"라며 "암행어사로 고향에 내려갔으면 춘향을 바로 구해줘야 했는데, 끝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다가 수청을 받겠냐고 묻고 거절당하자 그제야 춘향을 믿었다"고 꼬집었다.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인간시장' 등 수많은 작품 및 강연 활동을 해온 김홍신 교수는 "지적 허영심으로 드문드문 배웠지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해설하고 강연했던 기회들이 판소리를 계속 공부하게 했다"며 "목소리만 가지고 역사, 영혼, 노래, 그리고 흥과 한을 춤사위 없이 전달한다는 것은 인류문화유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극찬했다.

조선후기 사회에서 소설은 읽히기보다 낭송되면서 판소리와 인접한 예술로 존재했다. 이렇게 판소리와 소설은 따로 이해될 수 있는 장르가 아니었다. 2003년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판소리를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들었고, 알게 됐을까. "옛날엔 명절만 되면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너무 바빴다. 지금은 그런 것도 없고, 방송채널이 수십가지로 많아졌지만 판소리가 나오는 곳은 없다." 여든여덟의 흥보가 보유자 박송희 명창은 판소리를 듣는 사람, 아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든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나마 다행일까. '판소리로 듣는 고전문학'을 주제로 한 '득음지설' 공연이 올해로 5년째 열린다. 판소리 다섯 바탕의 보유자들이 출연하고, 문학인들이 직접 판소리 사설을 관객들에게 풀어서 설명하는 장이다. 오는 23일부터 5일간 서울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 '풍류'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남해성 명창의 수궁가를 시작으로 ▲박송희 명창의 흥보가 ▲신영희 명창의 춘향가 ▲성창순 명창의 심청가 ▲ 송순섭 명창의 적벽가 순으로 27일까지 하나씩 무대 위에 오른다. 김홍신 교수와 함께 김현룡, 이정원, 김기형 교수 등 고전문학 전문가들이 해설을 맡는다.

이정원 경기대 교수는 '전을 범한다(웅진지식하우스, 2010년 출판)'라는 책에서 심청전을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동체가 그 딸을 살해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독특한 해설을 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심청은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도덕심에서 죽으려고 했다. 우리 현대인들 역시 도덕적 딜레마에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 현대로 눈을 돌려 고민을 해볼 수 있는 텍스트가 바로 심청전"이라며 "뺑덕어멈은 그에 반해 '욕망'을 상징하며, 도덕을 위해 인간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도덕이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풀이했다.

적벽가를 해설할 김기형 고려대 교수는 "삼국지연의의 조조가 악인으로 등장하는데 적벽가에 와서는 그 악한 모습이 더 심하다. 조조의 군사들이 부모, 자식, 아내를 생각하며 잘못도 없는데 전쟁터에서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는 군사설움타령에서 애잔한 느낌이 클 것"이라며 "명창의 판을 청중들이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에서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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