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千日野話]'물의 신선'이 꼽은 최고 물맛은(64)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64)

[千日野話]'물의 신선'이 꼽은 최고 물맛은(64)
AD
원본보기 아이콘
"선암에 오르시니, 모든 게 신선으로 보이시는 모양입니다."

명월의 대꾸에 좌중이 웃었다.

"제가 예전에 수선(水仙)이란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단양골에 살았던 어떤 머슴이 이런 이름을 얻었습니다."
"머슴 이름에 어찌 신선이 들어가 있는지요. 기이합니다."

두향이 묻자 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여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어느 해 기근이 몹시 들어 먹을 것이 다 떨어지자 이 머슴이 이렇게 말했지요. '이제 곧 굶어죽을 것인데, 귀신이라도 좀 깨끗하였으면 좋겠구나.' 그러면서 날마다 냉천에 와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육신과 영혼을 씻으려는 심산이었지요. 배가 부르면 햇볕을 쬐며 산기슭에 가만히 누워 있었고 밤이 되면 헛간에서 잠을 잤습니다. 누가 그를 불쌍히 여겨 밥을 갖다 주었는데 그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지요."

"어머나, 왜요?"

두향이 물었다.

"남의 은혜로 연명하기는 싫다는 것이었죠. 냉천으로 마음을 깨끗이 씻었으니 그 청신(淸身)에 오점을 남기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오래 듣고만 있던 이산해가 말을 했다.

"아, 그 사람은 그냥 머슴이 아니라 대단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군요."

"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조카이자 제자인 산해의 말에 토정은 미소를 머금으며 얘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내내 굶으며 물만 먹었는데도 죽지 않고 오히려 얼굴이 맑아지며 생기를 유지하는 것이었죠.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이듬해 큰 풍년이 들어 이젠 고을이 살 만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수선을 불러서 머슴 일을 시키려고 하였지요. 그러자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예전엔 입이 급하고 배 속이 원하여 내 몸을 수고스럽게 하는 일을 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으며 마음의 평안까지 얻었는데 어찌 굳이 몸뚱이를 다시 수고롭게 하리오?'"

두향이 문득 약수를 손을 떠서 마시며 말했습니다.

"그 물을 마시고 이미 신선이 되었군요, 그 사람은."

"그랬나 봅니다. 수선은 머슴 일을 하지 않는 대신 물을 계속 마셨는데, 이젠 다른 물을 마셔도 그 맛을 정확하게 가려내게 되었지요. 사람들이 강물과 샘물, 시냇물, 우물물을 떠와서 마시게 하면 족집게처럼 알아냈습니다. 어디 물인지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 물이 사람에게 좋은지 나쁜지도 말해주었지요. 이때부터 단양사람들은 그를 수선(水仙)이라 불렀지요."

"아, 정말 수선이라 할 만하군요."

"한 정승이 이 소문을 듣고 수선을 한양으로 불렀지요. 서울의 이름난 샘물을 길어오게 하고, 그중 물맛이 가장 좋은 것은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수선은 삼청동의 성천(星泉)을 최고로 꼽았다 합니다. 성천은 삼청전(도교의 신을 모신 곳)의 우물로 칠성당에 제사를 지낼 때 쓰는 물입니다. 또 안현(지금의 무악재)의 옥폭정을 세 번째로 꼽았지요. 두 번째를 물으니 그럴 만한 게 한양에는 없다 하였습니다. 정승이 그럼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단양의 이 냉천약수를 말하더랍니다. 어떻게 물맛을 가리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물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살피면 알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합니다. 성천과 옥폭정수, 그리고 다른 물의 무게를 저울로 달아보니, 수선의 말이 틀림이 없었다 합니다."

"정말 기이한 이야기입니다."

두향이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 공서도 끼어들었다. "저도 이 부근 고을 선비의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흉년에 식솔들이 끼니를 거르게 되자 선비는 아침 일찍 일어나 물을 끓이고 밥상에 평소처럼 그릇을 늘어놓았지요, 그릇에 더운 물을 부어 온 집안 식구들이 둘러앉아 더운 김을 불어가며 그것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합니다. 배가 부르면 다시 일하러 가고 끼니때가 되면 다시 모여 물을 먹었지요. 그런데 얼굴이 윤택해지고 굶주림도 느끼지 않아 많은 이들이 죽어갔는데도 이들은 모두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하더이다."

명월도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어린 시절 평안도의 김신선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분은 원래 영변 출신이었는데 달사(達士)로부터 수련법을 배워, 굶주려도 곡식을 먹지 않았다 합니다."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단양 냉천약수의 비밀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국내이슈

  •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해외이슈

  •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