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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단양 냉천약수의 비밀(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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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63)

[千日野話]단양 냉천약수의 비밀(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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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디어 단양8경 중의 네 가지를 얻었습니다. 제1경은 사암풍병(舍巖楓屛)이요, 제2경은 구로모담(龜老慕潭), 제3경은 삼도일하(三島一霞)이며, 제4경은 석미신월(石眉新月)로 정하였습니다. 이제 다섯째 승경은 선암(仙巖)으로 할까 합니다. 선암에 제격인 분은 아무래도 선학(仙學)에 밝으신 토정이 아닐까 합니다."

"선(仙)이란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사람이 산에 들어있는 형상입니다. 산이 신령함을 지니는 것은 사람에게 생명이 되는 음식과 물과 정기를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며, 늘 변하지 않고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고 다가오는 모든 존재를 품어주기 때문이며, 인간에게는 하늘을 향한 염원의 길을 열어주며 끊임없이 수행의 영감(靈感)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산을 큰 공부처(工夫處)로 여겨왔으며, 단양의 선암을 사랑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사또께서 이런 광영을 주시니 그 기대에 보은을 해야 할 텐데 둔한 재주가 따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마침 선암으로 드는 길이 제법 길어, 생각을 묵힐 시간이 있어 다행입니다. 제5경의 칭경(稱景ㆍ경치에 이름을 붙임)을 기꺼이 맡겠습니다."

토정의 말에 모두 박수를 쳤다.
선암계곡은 단양 단성면 가산리에서 대잠리로 이어지는 25리의 기암계곡이다. 지금은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으로 나뉘어 있으나 퇴계 시절에는 그런 명칭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상선암과 중선암이란 이름은 17세기에 생겨났다. 상선암은 수암 권상하(1641~1721)가 명명했다. 권상하는 이후 기호학파의 정통으로 우뚝 선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이다.

중선암은 곡운 김수증(1624~1701)이 이름 붙였다. 김수증 또한 우암과 함께 서인(西人)으로 활약한 지식인이다. 하선암은 성종 때 단양군수였던 임재광이 선암(仙巖)으로 명명하였다. 따라서 하선암이란 이름은, 상선암과 중선암이 정해지면서 원래의 선암이던 곳이 지리적 위치를 고려해 붙여진 듯하다) 16세기 중반, 퇴계 일행이 오른 선암은 따라서 하선암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선암계곡에는 3층으로 된 100여척의 넓은 바위 위에 둥글고 거대한 바위가 얹혀 있는 기이한 정경이 펼쳐진다. 이 바위의 모습이 미륵부처 같다 하여 불암(佛巖)이라는 이름을 얻어 그간 널리 쓰이고 있었는데, 성종 대의 임재광이 불교적인 냄새를 지우고자 선암(仙巖)으로 바꾼 것이다. 불암 대신 선암으로 고친 사실을 후세사람인 퇴계도 언급하면서 '잘한 일'이라고 코멘트를 남기고 있다.

단양군수 이황은 이곳에 들러 아름다운 봄 진달래와 철쭉, 가을의 꽃단풍을 황홀하게 바라보았고,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속세를 버리고 싶었다"는 놀라운 고백을 적어놓았다.

계곡을 오르면서 이야기꾼인 토정 이지함 곁에 두향과 명월이 나란히 걸었고 그 뒤를 이산해가 졸졸 따라걸었다. 퇴계와 구옹 이지번, 그리고 공서는 뒤에서 말없이 풍경을 음미하며 걷고 있었다. 그들은 냉천(冷泉)에서 잠시 멈춰 쉬었다.

"이곳 냉천의 약수는 삼경지수(三驚之水)라고 합니다. 세 번 놀란다는 뜻이니, 무엇에 놀라는 걸까요?"

토정이 묻자 명월이 말한다.
"계곡 물에 섞이는데도 물이 훨씬 차서 놀랍군요."
"맞아요. 그게 일경(一驚)입니다. 냉천약수는 항상 그 온도를 유지하고 있기에 여름엔 차게 느껴지고 겨울엔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2경은 뭘까요?"
이번에 두향이 대답한다.
"아마도 물맛 아닐까요?"
토정이 너털웃음을 웃는다.
 "어찌 이렇게 잘들 아신단 말입니까? 물맛이 거기서 거기라지만, 냉천약수를 먹어본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물이 달고 그윽하여 신선수라고들 하죠. 그렇다면 3경은 무엇일까요?"

이번엔 대답들이 없다. 잠시 기다린 뒤에 토정은 말한다.
"제가 얘기할 걸 하나는 남겨주셔서 다행입니다. 냉천은 절대 쉬지 않습니다. 가뭄이나 계절과 상관없이 일정량이 흘러나옵니다. 이렇게 한결같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물도 이쯤이면 수선(水仙)이라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단양제4경 석문은 '석미신월'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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