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과 안현수란 이름이 '오버랩'되면서 오래전 화제가 됐던 '명자 아끼꼬 쏘냐'란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1992년 이장호 감독이 만든 김지미 주연의 이 영화 제목인 '명자 아끼꼬 쏘냐'는 같은 인물이다. 명자가 일본에 가서는 아끼꼬(明子)가 됐고, 러시아의 사할린에 가서는 쏘냐가 됐다. 지금의 빅토르와 달리 70여년 전의 명자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을 비난하는 여론보다 그가 왜 귀화할 수밖에 없었느냐는 동정론이 더 컸다. 빙상연맹의 파벌주의를 비판하는 데는 청와대까지 나설 정도였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절묘하다. 며칠 전 아끼던 후배가 이직을 한다고 해 술잔을 기울였다. 사표를 내자마자 치열하게 선배와 동기들에게 술로 설득 당했을 그에게 역시 술로 위로를 건넸다. "국적도 바꾸는 마당에 직장을 옮기는 게 뭔 대수냐"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이름 없는 민초들에겐 회사 바꾸는 것도 꽤나 버거운 일이다. 평생 직장이란 단어가 평생 직업으로 대체됐다지만 대부분의 개인들은 빅토르보다 쏘냐쪽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전필수 팍스TV 차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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