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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경쟁의 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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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새벽 5시. 전화벨이 울렸다. 한달전 등산을 가기로 약속했던 후배였다. 워낙에 '술꾼'들이라 전날 폭음의 위험이 있으니 일어나는 사람이 먼저 전화해 주기로 약속한 터였다. 당초 세명이 약속했는데 한명이 펑크까지 낸 상태라 "다음에 가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듯 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 한다는 고집으로 버틴 인생, 산 입구만 가도 반은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북한산초등학교 앞에서 라면 한그릇씩 하고, 씩씩하게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들어섰다. 차까지 다니는 도로를 한참 걷다 보니 1차 선택의 시간이 닥쳤다. 콘크리트 포장도로 쪽으로 좀 더 가는 노적사쪽을 택할 것인가, 좀더 험한 백운대·원효봉 길로 갈 것인가.
그래도 산을 왔는데 정상쪽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바로 백운대쪽을 택했다. 콘크리트 포장도로 대신 돌길과 흙길이 나왔지만 그래도 걸을만 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2차 관문. 원효봉과 백운대가 갈라지는 길이었다. 1년반 전, 회사 단합대회때 이후 첫 등산이었다. 당시 원효봉을 등반했다. 갈림길에서 불과 600미터 거리인데도 중간에 쉬다 가다를 반복했었다. 발길이 자연스레 원효봉쪽으로 쏠리던 찰라, 후배가 천천히 쉬면서 가더라도 백운대까지 가자고 제안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도 없고 한적했다. 쉬어가면 못갈 것도 없지 싶었다. 기록을 잴 것도 아니고 낙오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페이스 조절을 했다. 너무 페이스 조절을 한 탓인가, 안 보이던 사람들이 밑에서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추월해 가는 이들이 늘어갔다. 길은 더 가파르고 험해졌는데 내 속도는 조금 더 빨라졌다.(느낌만 그랬을 가능성이 더 높지만.) 덕분에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쉬는 구간이 점점 짧아졌다. 지금 백운대를 오르는 이들 중에 나보다 저질 체력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한 산행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오버 페이스를 하고 있었다.
여덟살 학교에 입학한 이후 줄곧 경쟁하며 살았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칭찬은 성적이 오르거나 좋았을 때만 받았다. 개근상이 우등상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던 선생님조차 우등상을 받은 아이를 더 챙기는 듯 했다.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행동보다 1등을 하는 것이 더 대접을 받았다.

경쟁할 아무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몸은 경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됐으니 30여년의 경쟁생활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아들에게 "공부해라" 대신 "바르게 살아라"고 말만 하지 말고, 조금 더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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