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희가 가고 나서도 하림은 한참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던져놓고 간 말들이 빈 화실에 파문처럼 남아서 일렁거렸다. 하림은 파문처럼 일렁이는 말들을 다시 천천히 되새겨보았다.
‘<차차차 파라다이스> 실재 주인은 윤재영이란 사람이래요. 이 화실 주인 여자 말이예요.’
하림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윤여사, 윤재영, 그녀가 차차차 파라다이스의 실재 주인이라니....? 그리고 뒤에서 이 모든 일을 조종한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였다니....? 그럼, 그녀는 처음부터 개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고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송사장이 사기로 감옥까지 왔다는 말이나 빈털터리라는 말은 소연이 한테서도 들은 적이 있었다. 빈털터리가 이렇게 거창한 사업을 벌여놓은 것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거나 동업자, 아니면 후견인, 아니면 배후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남경희의 말에 의하면 바로 그 배후가 바로 돈 많은 윤여사라는 말이었다.
지난 번 동철이랑 나타나 민물새우탕으로 점심을 사주러 갔을 때의 윤여사 모습이 떠올랐다. 이층집 여자 남경희의 이야기가 나오자, ‘고년이 보통 아니라고 들었어요. 멍텅구리 이장 운학이 그녀 뒤를 졸졸 따라 다닌다는 이야기도 들었구. 그래, 직접 만나보니까 어때요?’ 하고 그녀의 도톰한 입술에서 거침없이 년짜가 튀어나오지 않았던가.
그리고는 ‘고년이 글쎄, 거기다가 기도원이니 뭐니 지으려고 난리 피우고 있단 말은 들었어요. 아, 남의 동네에 들어와 사는 주제에 지 까짓게 뭔데, 뭘 짓는다고 난리야, 안 그래요? 하림씨가 한 마디 해주지 그랬어요?’ 하고 서슴없이 서슬 푸른 싸움닭처럼 내뱉지 않았던가. 그녀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일이라면 그렇게 시퍼렇게 각을 세워 말을 할 것까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날 자기에게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투로 행동한 것도 이상했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그녀가 그동안 이 골짜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라도 이것저것 물어보아야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날 그녀는 하림이 뭐라 대꾸하건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았고, 별로 호기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다 알고 있거나 아무것도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예로부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더니 만일 그렇다면 수도 고치러 온 사내, 최기룡이 뛰는 놈이었다면 윤여사, 윤재영은 나는 놈이 되는 셈이었다.
하림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창문께로 시선을 던졌다. 처음 왔을 때 그대로 창문엔 푸른 줄무늬 커튼이 쳐진 채 닫혀있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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