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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석채·정준양, 손금에 칼질을 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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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많이 알거나 좋아하거나 즐기는 것이 전부는 아닌가보다. 신(神)의 한수는 바로 '운'인 게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옛말은 그래서 부질없다.

모그룹 계열사 CEO가 어느 저녁자리에서 남긴 말이 돌고 돌면서 꼬리를 문다. 공자 말씀인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호지자불여낙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에 한문장이 추가됐다. 낙지자불여운지자(樂之者不如運之者). 아는 자도, 좋아하는 자도, 즐기는 자도 '벼락같은 행운'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안녕'을 바라는 이심전심에 연말 인사철까지 겹치면서 송년회 단골 안주로 등극했다. 그 CEO가 변형된 공자 말씀의 원조일 리 없지만 요즘 돌아가는 재계 판세를 보면 촌철살인이다. 바야흐로 '죽느냐, 사느냐 운명의 시즌'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잔여 임기 1년4개월을 앞둔 지난 15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석채 전 KT 회장이 물러난 지 3일 만이다. "조직에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두 사람의 은퇴사가 오롯이 겹친다. 이질적이던 두 삶도 불행한 동선으로 포개진다. ‘3일’의 연결고리는 '공민기업(공기업에서 민영화한 기업)'이다. 2000년, 2002년 각각 민영화한 포스코와 KT는 대주주가 없는 지분 구조 탓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 리스크에 시달렸다. 올 들어서도 두 사람 퇴진을 염두해둔 '3월설' '8월설'이 난무했다. 그때마다 정 회장은 '침묵'으로, 이 전 회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항변했지만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실 무근'이 어떤 뜻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10월21일 검찰이 이 전 회장을 겨냥한 압수수색에 들어가면서 급물살을 탔다. 표면적으로는 시민단체가 제기한 배임 혐의에 대한 수사였지만 교체 시나리오가 본격 가동한 것이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11월1일 두번째 압수수색, 이틀 뒤(3일) 이 전 회장의 사의 표명, 그 열흘 뒤(13일) 검찰의 3번째 압수수색. 이례적인 3차례 압수수색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의 '버티기'에 대한 응징이라고 해석했다.

정 회장은 세무조사가 '물러나라는' 사인이었다. 역시 '이례적'인 3년 만의 세무조사였다. '이석채 다음에는 정준양'이라는 호사꾼들의 뒷담화는 점쟁이처럼 맞아떨어졌다. 조만간 열리는 포스코 이사회에서 정 회장의 사표가 수리되면 후임 선임 절차가 진행될 것이다. 결백을 주장하는 이석채, 말을 아끼는 정준양. 이명박 정권에서 수장을 맡았던 두 사람의 행운은 약발이 다했다. 떠나는 발걸음에는 불운이 어둡게 드리워졌다.
재계도 뒤숭숭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이어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까지 검찰 수사의 칼끝에 놓였다. 일부는 이명박 정권 때 승승장구했던 전력이 있다. 효성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가다. CJ는 온미디어를 인수하며 방송사업 확장에 성공했다. 초고층빌딩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를 받아낸 롯데그룹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4대강 사업을 주도했던 건설사들도 사면초가다. 전 정권에서의 행운이 현 정권에서 불행으로 둔갑한 꼴이다.

일본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신입사원 면접 때 '운'이 좋다고 믿는 이들을 먼저 뽑았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운도 실력'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권자의 입맛에 따라 운명이 엇갈리는 것은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다. 예측 불가능한 사회는 불행하다. 많이 알고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성공해야 정의사회다. 세계 정복을 꿈꾸던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정복에 나서기 전 점쟁이 말대로 칼로 손금을 늘렸다. 21세기 우리 재계도 불행을 피하기 위해 손금에 칼질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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