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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이수정의 '달이 뜨고 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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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뜨고 진다고 너는 말했다. 수천 개의 달이 뜨고 질 것이다. 네게서 뜬 달이 차고 맑은 호수로 져서 은빛 지느러미의 물고기가 될 것이다. 수면에 어른거리는 달 지느러미들 일제히 물을 차고 올라 잘게 부서질 것이다. 이 지느러미의 분수가 공중에서 반짝일 때 지구 반대쪽에서 손을 놓고 떠난 바다가 내게로 밀려오고 있을 것이다.

이수정의 '달이 뜨고 진다고'

■ 달이 뜬다고 말하지 않고, 달이 진다고 말하지 않고, 달이 뜨고 진다고 너는 말했다. 달이 뜨는 것과 달이 지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처럼 서로 붙은 까닭은 시간이 너무나 빨리 흘러가기 때문이다. 나는 대답한다. 수천개의 달이 뜨고 질 것이라고. 한 개의 달이 뜨고지는 건, 단 하루의 일이지만, 수천개의 달이 뜨고 지는 건 수천 날의 일이다. 그렇게 긴 시간도 한꺼번에 일어난다. 이 시의 긴장은 이 점에서 생겨나는 듯 하다. 긴 시간들이 순간처럼 빠르게 돌아간다. 시를 읽으면서 달덩어리를 휘휘 돌리는 '달불놀이'가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달이 떠올랐다 호수로 지면서 그 안에서 은빛 지느러미를 지닌 물고기로 바뀐다. 이때부터 우리는 한번도 보지 못한 달의 황홀한 유영을 보게 된다. 달 지느러미들이 차올린 물분수가 잘게 부서지는 풍경. 달이 달려가는 동안 지구 반대쪽에선 손을 놓고 헤어졌던 바다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 우주적인 달과 물의 순환. 나는 이것을, 여자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헤엄치는 달을 따라 우주를 숨가쁘게 돌아오는 여자. 생리가 출렁거리며 한 달을 회전하는 동안, 멀어졌던 사랑은 돌아온다. 다시 불덩이가 되어 돋아온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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