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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김남조의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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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말을 버릴까 싶네/몇백 년 늙어버린/말과 울음에게/가서 쉬어라/가서 쉬어라고/거대한 하늘 물뿌리개/봄비 적시는 이 날에/작별하고 싶네//겨우내 노래하던 새/묘지에서도 노래하던 새/몇백 년 그럴 양으로/성대가 더욱 트인/새여 노래여/날아가거라/날아가거라고/손짓해 보내고 싶네//소리내는 모든 건/내 하늘에서/석양으로 저물어가고/청징한 고요 하나/남은 삶의/실한 고임돌였으면 싶네

김남조의 '고요'

■ 중국 화가 팔대산인이 어느 날 붓을 들어 '아(啞, 벙어리)'자 한 글자를 써서 문에 붙인 뒤, 입을 딱 닫아버렸을 때, 그것이 한 인간과 우주의 필사적인 대치인 것을 알아채는 이는 없었다. 지리산 쌍계사에 가니 초의스님도 머물렀다는 아자방이 있었는데, 아궁이를 놓은 바닥이 아(亞)자 모양이어서 그 이름으로 쓴다고 하였다. 방문 입구(口)가 그 옆에 붙어있으니 저절로 아(啞)자가 아닌가. 마음문은 열되 입은 꽉 닫아 고요한 내부를 지키라는 계(誡)인 셈. 시인의 절필은 아(啞), 한 글자를 쓰는 마음과 닮았다. 세상을 위해 시 한 글자도 내놓을 수 없을 것같은, 굳은 혀의 무게를 느껴본 이라야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자기 바깥에 대한 염의와 분노의 표현일수도 있지만, 언어 자체에 대한 환멸과 무력감일수도 있다. 김남조는 그런 방어적 수준 그 이상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언어들을 많이 괴롭히고 지치게 하였으니, 수고하였다. 이젠 새장의 새를 내보내듯 혀 안에서 언어들을 꺼내 날려보내고 싶다고 한다. '이젠/말을 버릴까 싶네' 이 한 마디만으로도, 산만과 혼선으로 나날이 피로하게 출렁이는 내게, 감동적인 충격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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