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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김영랑의 '거문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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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벽에 기대 선 채로/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데/내 기린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의 손/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았으려니/땅 우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바깥은 거친 들 이리떼만 몰려다니고/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다니어/내 기린은 맘 둘 곳 없어지다 (…)

김영랑의 '거문고' 중에서

■ 가끔 나는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서, 내 안에 들어있는 빛나는 아이를 본다. 명치와 가슴 사이쯤에 앉아 눈을 감고 미소를 짓는 아이는 마치 광선이 싸인 것처럼 환하다. 이것이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하다가, 우주를 움직이는 거대한 영(靈)이 저마다의 개체 속에 동시 분재(分在)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 그를 바라보는 일은 평화롭고 따뜻하며 더할 나위 없는 안도감을 주는 듯하다. 김영랑은 그 심령 안에 기린이 들어있나 보다. 동물원에 있는 기린이 아니라, 다섯 빛깔의 털이 영롱하며 이마에 긴 뿔이 달린 동양의 영수(靈獸)이다. 중국의 한무제는 기린각을 세워 당시의 뛰어난 인물 11명의 초상을 걸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기린아라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영랑의 가슴 속에 든 기린아는 아마도 시의 정령(精靈)이 아닐까. 기린은, 바로 마음의 거문고인 심금(心琴)과 동일선상의 은유에 걸쳐져 있다. 세상엔 이리와 잔나비들만 바글거릴 뿐, 기린의 시를 이해해줄 귀와 눈이 없다. 그러니 문 꽉 닫고 침묵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이 가여운 마음거문고를 안고, 허명(虛名)의 빈 사람만 울고 있는 것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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