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지난 1년여의 분쟁은 악몽이었다. 소득 없는 '치킨 게임'으로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자유계약선수(FA) 신분과 해외 이적 문제로 대립 중인 흥국생명 배구단과 김연경의 줄다리기다.
일단락되는듯했던 사태는 최근 국제배구연맹(FIVB)의 갑작스런 입장 번복으로 혼란에 빠졌다. 6일(한국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법률위원회를 앞두고 김연경 사태를 재검토하겠다고 통보했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내렸던 결론을 뒤집은 것. 당시 FIVB는 "김연경은 흥국생명 소속"이라며 "해외 이적문제는 대한배구협회(KVA) 및 흥국생명과 협상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었다.
지루한 공방의 핵심은 다시 FA 자격 취득 여부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한 김연경은 국내에서 4시즌을 소화했다. 2009년부턴 임대신분으로 일본 JT 마블러스에서 2년간 몸담았다. 이후 터키 페네르바체로 둥지를 옮겨 활약을 이어갔다. 이때만 해도 양 측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김연경은 2011-12시즌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에서 페네르바체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회 최우수선수(MVP)와 득점왕을 동시에 거머쥔 김연경은 "이적을 적극 지원해준 흥국생명 배구단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pos="C";$title="[포토] 해외진출 계약서에 사인하는 김연경";$txt="김연경(왼쪽)과 권광영 흥국생명 단장이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정재훈 기자]";$size="540,340,0";$no="2012090718295949807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관계가 틀어진 건 지난해 5월부터다. 페네르바체와 임대 계약을 마친 김연경이 흥국생명과 협의 없이 에이전트를 내세워 해외 구단 이적을 추진했다. 국내에서 FA 자격을 얻으려면 6시즌을 뛰어야 한다. 하지만 김연경 측은 "해외 임대기간까지 포함해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고 주장했다. 2012 런던올림픽이란 중대사에 가려 잠시 '휴전'에 돌입한 양 측은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다시 대립각을 세웠다. 실마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KVA가 나서 중재안을 마련했지만 오히려 갈등은 더 심화됐다. 당시 양 측이 서명한 합의문은 ▲김연경은 원 소속 구단인 흥국생명 소속이며 이를 토대로 해외진출을 추진한다 ▲해외진출 기간은 2년이며 이후 국내리그에 복귀한다 ▲해외 진출의 소속팀은 협회의 중재 아래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국제기구나 법률적인 판단에 따르기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기나긴 불협화음으로 흥국생명은 애써 쌓은 기업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약자인 선수를 볼모로 횡포를 부리는 '나쁜 갑(甲)'이란 오명을 썼다. 소속 문제만 명확히 인정한다면 김연경의 요구대로 해외활동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으나 FA 주장을 고수하는 김연경 측의 거부로 타협점을 찾는데 거듭 실패하고 있다. 국내 프로배구의 근간을 무너뜨려선 안 된다는 판단 아래 숱한 손해를 감수해왔지만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분쟁에 할 말을 잃은 분위기다. 흥국생명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배구 발전이란 명분으로 프로와 아마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유망주들의 해외이적을 위해서도 많은 배려를 했는데 돌아온 대가가 너무 비참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냉랭한 분위기 속에 이날 FIVB가 보내온 최종결정문은 기존 방침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여전히 김연경의 원 소속구단은 흥국생명이다. 페네르바체는 2013-14시즌 김연경을 데려가려면 별도의 이적료를 지불해야 한다. 대신 추가된 조항에 따르면 김연경이 다음 시즌에도 흥국생명과 계약을 맺지 않을 경우 원 소속구단은 없어진다. 양 측의 해석 여부에 차이는 있겠으나 최소 1년은 불편한 동거를 지속하게 된 셈이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상위 기관에서 원칙을 무시하고 애매하게 일을 처리해 구단만 곤경에 처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어 "그룹 차원에선 이미 배구단 운영에 회의를 느껴 다른 종목으로 전향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번 FIVB의 재심 결과에 따라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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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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