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장의 힘은 세무조사권 행사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이 권한이 통제되고 절제되지 않으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온다. 박근혜 정부의 국세청장은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요구를 함께 어깨에 짊어진 형국이다. 통치권자로부터는 복지 재원 135조원 중 세입 부문 55조원을 직접 증세(세율 인상) 없이 조달하라는 지엄한 분부를 받았다. 동시에 국민으로부터는 공정 과세와 납세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세정을 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첫째, 강도 높은 세무조사다. 매년 세무조사 대상자는 법인 4000개와 개인 5000명 정도인데, 이는 전체 납세자의 0.2%에 불과하다. 이들로부터 연간 5조원 정도를 징수해 왔다. 조사 대상을 3배 정도 확대하면 상당한 세입 증가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세무조사를 확대하면 상대적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의 세금 부담이 가중된다. 부족한 세무조사 인력으로 조세 전문가가 포진한 로펌과 회계법인의 방어벽을 뚫어야 한다. 더구나 로펌에는 전직 고위 국세청 출신도 수두룩하다. 이들은 과세 관청의 수(手)를 꿰뚫는 자들이다. 국세청장은 이들보다 실력이 출중해야 한다. 동시에 납세자 권리를 챙기는 법적 마인드도 필요하다.
오히려 국세청장이 힘을 집중해야 하는 분야는 '합법을 가장한 거래'다. 법의 허점을 비집고 세금을 포탈하는 자들이다. 차명계좌 개설, 금전 차용계약을 통한 증여세 포탈,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탈세 거래 등이 그 대상이다. 국세청장은 '지하경제의 조무래기'보다는 '지상경제의 거대 악'과 싸워 이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철저한 국세청 내부 관리다. 창피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전직 국세청장을 포함해 하위직 공무원까지 부정에 연루된 사건이 많았다. 뜯어고쳐야 한다. 국세청 요직을 특정지역 출신이 독점하는 것도 시정돼야 한다. 세무조사나 세원 관리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요직에 오르는 자가 따로 정해져 있어서야 누가 사명감으로 일하겠는가.
국세청장은 외부 압력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는 한편 본인 스스로도 외부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국세청장을 겁박(劫迫)할 정도의 파워라면 권력기관이나 정치인 아니겠는가. 이들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국세청장 자리를 디딤돌로 삼아 장차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할 요량이라면 그것은 오산이다. 납세자에게 해가 됨은 물론 본인도 다치기 때문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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